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쿨 오브 락’에서 잭 블랙이 분한 듀이는 록 스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실상 그의 처지는 그나마 있던 클럽의 밴드에서 쫓겨나고 친구의 집에 얹혀사는, 그야말로 음악적 야심으로만 가득 찬 백수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같이 사는 친구 녀석이 일하는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게 되면서, 가짜 선생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은 어려도 한참 어린 그가 맡아야 될 학생들을 만나면서 터지게 된다.
나는 웹진에 글을 쓰는 일을 함과 동시에 실용음악과 입시반 학생들의 조교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한 지 반 년을 훌쩍 넘긴 지금 돌이켜보면, 학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 고된 적도 있었지만, 매번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주었던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하루 종일 학교 공부 하느라 지친 그 작은 어깨에 무거운 기타나 베이스를 메고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음악을 향해 달리는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영화에서 ‘미스터 슈니블리’라는 친구의 이름으로 대리 선생으로써의 인생을 살게 된 듀이는, 단순히 그토록 염원했던 락 밴드를 구성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주고, 락 음악의 역사를 가르치며, 락 음악의 정신을 몸소 보여준다. 성적을 매기는 프로젝트라는 그의 거짓말은 잘못됐다쳐도, 아이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추스르고 돌아서면,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낑낑대며 연습하는 아이들에게서 하나같이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용 음악을 하려는 그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대학은 단 하나뿐이고, 가고 싶은 이유를 물어봐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영화과에 이어 돈 되는 학문이 되어버린 실용음악과는 전국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 ‘실용음악과 공화국’으로써 인력 과잉 공급을 양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우울하다. 그 많은 아이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각자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고 공간이 부족하다. 막연하게 그저 음악을 위해 달려왔는데 휑한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지런히 12년을 공부하고 유수한 대학을 졸업했으나, 막상 사회로 나왔을 때 자신의 역할을 갖고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고학력 실업자들과 다를 바 없다. 실용음악과를 나온다고 전부가 음악을 하며 스스로가 원했던 만큼의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쿨 오브 락’을 보지 못했다면 한 번 쯤 보고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를 권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미덕이란 이렇다. 미스터 슈니블리는 대략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맡을 수 있는 분야를 준다. 그리하여 ‘스쿨 오브 락’에서는 밴드 뿐 만 아니라 의상 디자이너가 있으며, 멋지게 조명을 쏘아대며 무대를 돋보이게 해 주는 아트 디렉터도 있다. 또한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밴드 매니저까지. 그들은 직접적으로 무대에 서지는 않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밴드를 빛나게 해 주었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심벌즈를 치던 개구쟁이는 드럼을 통해 자신만의 품세를 만들어가며, 기타 치는 수줍은 꼬마는 전설적인 기타 플레이어나 밴드 들을 연구하며 록의 정신을 배워간다. 동양계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멋지지 않다고 여겼던 소년은 키보드 앞에서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나는 그들이 음악을 하면서 자신이 어떠한 즐거움을 느끼며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다양한 음악을 듣고 서로의 연주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음악으로 이끌게 한 아티스트의 삶을 엿보길 바란다. 또한 어른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믿고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는 단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닌, 다양한 음악과 생각을 가지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아티스트들로 가득했으면 한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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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8일 화요일
Music is the Universe: 견제하지 않는 마음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클럽데이’라 해서 힙합 클럽엘 간 적이 있어. 그런데 그곳엔 온통 덩치들과 힙합퍼라 불리길 원하는 그들이 그 외의 사람들은 얼씬도 못하게 모든 스테이지를 장악한 적이 있어. 계속 치이고 밀리다 콘택트렌즈가 빠져서 눈물이 나는데, 더 화가 났던 건 음악조차 즐기지 못하고 피난하듯이 클럽을 빠져 나왔던 기억이야."
"보통 힙합 공연에 가면 관객석의 남자들이 한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무대 위 남자 MC를 향해 Respect를 표시하고,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이유 없이 소외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힙합 클럽에 잘 안 가게 돼."
Music is the Universe
대학로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나와 그녀들 셋이 최근에 나눈 이야기들이다. 여행하는 작은 스토리숍을 운영하는 나의 친구는 이런저런 문화적인 열망을 사람들과 함께하길 좋아하며, 이번에는 '소녀들의 슬램파티'라는 컨셉으로 판을 짜는 중이다. 단순히 '너의 글이 개인적으로 좋아서'라는 추천으로 참가자가 된 나는 슬램이 도대체 무엇인가 알아보고자 마크 레빈의 98년도작인 영화 'Slam(슬램)'을 감상하였다. 소위 '니그로(검둥이)'라 자신을 밑바닥으로 낮추는 뉴욕 빈민가 흑인들의 삶 속에서 분노하는 빈곤과 상실되는 자아는 영화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시처럼 읊어지고, 그는 일정한 규칙 또는 힙합 뮤직에서 중시되는 라임과 플로우를 무시한 채, 그만의 리듬으로 언어를 동여매고 있었다.
이처럼, 슬램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퍼포머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중요시하게 여겼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슬램을 통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의 세계에 한층 더 깊게 빨려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는 이에 받들어,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비춰진 기존의 힙합 문화가 실질적으로는 폐쇄적이라는 것에 입을 모았고, 소녀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힙합 공연과 슬램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그들과 한참 이야기하다, 문득 장르의 특수성이라는 주제로 혼자만의 회담에 빠져들고 말았다. 음악 장르가 다르면 느낌이 다르고, 그것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음악과 가장 걸맞는 분위기의 문화들을 만들어내고 또는 음악이 그 문화를 따라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6-70년대 그루피들을 양산해냈던 비틀즈가 그 당시의 보수층들에게 있어선 난감했을 것이고, 아름다운 풀들을 엮어 피워내는 환각과 사랑을 때로는 방종과 헷갈리기도 하였던 자유를 누린 포크 록의 히피세대는 베이비붐의 주역들에겐 치욕이었을 것이다. 마초적인 이미지의 헤비메탈 보이에게 근접할 수 없었던 긱(geek)들이 나중에 커서 포스트 펑크의 주역이 된다든지, 드라마 퀸의 소녀들에 반하는 록큰롤 걸들 등 음악은 세대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자아욕구를 실현시켜 주기도 한다. 힙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들어봤는데 고개가 까닥여지고, 리듬이 좋아 움직여보니 속된 말로 간지도 좀 나더라 하는 첫 만남에서, 더 좋아지다 보니 힙합을 하는 그네들의 습관부터 게토(ghetto)정신에 이름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한 발짝 더 앞선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음악이든, 영화든 순수한 팬을 넘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고 위험한 척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중문화란 혼자의 힘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데도, 매니악이 되어버리면 자신 이외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새로움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너무 많이 알아' 슬픈 현실이 종종 발생한다. 서두에서 언급된 힙합 브라더의 경우만 보더라도, 외향적으로 비춰지는 스타일이나 그들만이 감정할 수 있는 바디 랭귀지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힙합에선 정해진 룰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적용되고 있는 룰을 새로운 관객은 맛보고 있다. 음악이 먼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학교처럼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의 문화적 충격이 앞서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몇몇 배타적인 음악팬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클럽과 모이는 사람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최신 경향처럼 다뤄온 미디어의 문제도 크다. 모 케이블 티비가 항상 펼치는 바이브 파티만 보더라도 드레스 코드와 외모, 섹슈얼리티가 마치 힙합 클럽의 일환인냥 조명한다. 그래서 클럽은 항상 불편하다. 무언가 다 갖추고 놀아야하며, 외적 자신감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기도, 나를 사랑받기도 힘들어한다.
아마도 슬램파티의 그녀들은 이런 자리를 원했던 것 같다. 모두가 환영받는 분위기, 성, 나이 차별 없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다 같이 두 손 두 팔 벌려 하나가 될 수 있는 소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힙합을 예로 들어왔지만 모든 장르 마찬가지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
공연 문화를 지키는 것,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함부로 얕보지 않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공통 언어인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2005. 09. 10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보통 힙합 공연에 가면 관객석의 남자들이 한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무대 위 남자 MC를 향해 Respect를 표시하고,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이유 없이 소외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힙합 클럽에 잘 안 가게 돼."
Music is the Universe
견제하지 않는 마음
대학로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나와 그녀들 셋이 최근에 나눈 이야기들이다. 여행하는 작은 스토리숍을 운영하는 나의 친구는 이런저런 문화적인 열망을 사람들과 함께하길 좋아하며, 이번에는 '소녀들의 슬램파티'라는 컨셉으로 판을 짜는 중이다. 단순히 '너의 글이 개인적으로 좋아서'라는 추천으로 참가자가 된 나는 슬램이 도대체 무엇인가 알아보고자 마크 레빈의 98년도작인 영화 'Slam(슬램)'을 감상하였다. 소위 '니그로(검둥이)'라 자신을 밑바닥으로 낮추는 뉴욕 빈민가 흑인들의 삶 속에서 분노하는 빈곤과 상실되는 자아는 영화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시처럼 읊어지고, 그는 일정한 규칙 또는 힙합 뮤직에서 중시되는 라임과 플로우를 무시한 채, 그만의 리듬으로 언어를 동여매고 있었다.
이처럼, 슬램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퍼포머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중요시하게 여겼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슬램을 통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의 세계에 한층 더 깊게 빨려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는 이에 받들어,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비춰진 기존의 힙합 문화가 실질적으로는 폐쇄적이라는 것에 입을 모았고, 소녀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힙합 공연과 슬램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그들과 한참 이야기하다, 문득 장르의 특수성이라는 주제로 혼자만의 회담에 빠져들고 말았다. 음악 장르가 다르면 느낌이 다르고, 그것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음악과 가장 걸맞는 분위기의 문화들을 만들어내고 또는 음악이 그 문화를 따라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6-70년대 그루피들을 양산해냈던 비틀즈가 그 당시의 보수층들에게 있어선 난감했을 것이고, 아름다운 풀들을 엮어 피워내는 환각과 사랑을 때로는 방종과 헷갈리기도 하였던 자유를 누린 포크 록의 히피세대는 베이비붐의 주역들에겐 치욕이었을 것이다. 마초적인 이미지의 헤비메탈 보이에게 근접할 수 없었던 긱(geek)들이 나중에 커서 포스트 펑크의 주역이 된다든지, 드라마 퀸의 소녀들에 반하는 록큰롤 걸들 등 음악은 세대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자아욕구를 실현시켜 주기도 한다. 힙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들어봤는데 고개가 까닥여지고, 리듬이 좋아 움직여보니 속된 말로 간지도 좀 나더라 하는 첫 만남에서, 더 좋아지다 보니 힙합을 하는 그네들의 습관부터 게토(ghetto)정신에 이름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한 발짝 더 앞선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음악이든, 영화든 순수한 팬을 넘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고 위험한 척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중문화란 혼자의 힘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데도, 매니악이 되어버리면 자신 이외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새로움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너무 많이 알아' 슬픈 현실이 종종 발생한다. 서두에서 언급된 힙합 브라더의 경우만 보더라도, 외향적으로 비춰지는 스타일이나 그들만이 감정할 수 있는 바디 랭귀지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힙합에선 정해진 룰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적용되고 있는 룰을 새로운 관객은 맛보고 있다. 음악이 먼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학교처럼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의 문화적 충격이 앞서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몇몇 배타적인 음악팬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클럽과 모이는 사람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최신 경향처럼 다뤄온 미디어의 문제도 크다. 모 케이블 티비가 항상 펼치는 바이브 파티만 보더라도 드레스 코드와 외모, 섹슈얼리티가 마치 힙합 클럽의 일환인냥 조명한다. 그래서 클럽은 항상 불편하다. 무언가 다 갖추고 놀아야하며, 외적 자신감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기도, 나를 사랑받기도 힘들어한다.
아마도 슬램파티의 그녀들은 이런 자리를 원했던 것 같다. 모두가 환영받는 분위기, 성, 나이 차별 없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다 같이 두 손 두 팔 벌려 하나가 될 수 있는 소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힙합을 예로 들어왔지만 모든 장르 마찬가지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
공연 문화를 지키는 것,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함부로 얕보지 않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공통 언어인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2005. 09. 10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오, 레일라!
중학교 때인가 교복을... 벗지 않고 신발 주머니 달랑달랑 거리며 뛰어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하셨... 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으시고 내게 용돈을 주시면, 그 돈을 꼬깃꼬깃 모아서 저금통에 한 가득 넣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목돈으로 질펀하게 떡볶이 파티를 하면서 마치 자기가 단지 '쐈다는' 이유
하나로 형님이 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는데, 그런 건 사돈의 팔촌이 스치고 지나간 행인만큼 내겐 관심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게 유일한 삶의 오아시스는 학교가 파한 뒤 찾아가는 레코드 가게였고, 지금은 MP3가 판친다지만 그 땐 자기장에 녹음된 테이프가 수두룩했던
시절이었는지라 손에 먼지 묻혀가며 테이프 보는 재미에 빠져, 바깥 세상에선 어떤 미친놈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는 말을 생방송 뉴스
도중에 남겨 장안이 그 얘기로 시끄러워도 내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엔 도청장치도 없었고, 오로지 눈 앞에 보이는 음악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이거 함 들어볼래?"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Eric Clapton의 MTV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이 담긴 앨범을 건네주었다. 2단으로 접혀 말끔하게 제목이 보여지는 세로 부분이 파란색이었다. 그건 어김없이 소니(Sony)를 뜻했다. 순전히 색깔의 취향이지만 우매하게도 나는 이 색깔이 빨간색이면 잘 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빨간색의 비엠지(BMG)는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내가 안 사줘서 망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에릭 클랩튼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그의 놀라운 기타 연주에는 클랩(Clap)해 주고 싶었다.
누구는 음악으로 빠지게 되는 입문 과정이 과도하게 입을 빵끗대는 오선생의 <굿모닝
팝스>라고 하면서 다년간 FM을 통해 다져진 영어 실력으로
이어폰을 낚아채더니 에릭 클랩튼의 'Layla'를 듣고는 그야말로 에프엠으로 해석을 하고 잘난체하는
꼬라지를 잘근잘근 씹어서 쾍 뱉어버리려던 찰나에 내게 에릭 클랩튼을 추천해 주던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왠 일인지 오늘 내게 말을 걸려고 한다. 쭈뼛하며 어색한 마음 흐트러트리고자 테잎 몇 개를 들락날락 거리며 만졌는데 각이 빗나갔는지 뭉텅이로 와락 떨어지고
말았다. 구슬치기 하면 수 십 개는 땄을 눈물방울이 소리 내어 떨어졌다. 왜, 사람이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까지
생각나면서 자기비하를 하기 마련인데 오늘이 딱 그랬다. 테이프를 떨어뜨려 소란을 일으킨 내가 싫었고,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테이프를 만지작 거리다 떨어뜨린 내가 싫었다.
심지어는 그 재수없는 녀석처럼 팝송 가사 하나 해석 못하는 내가 싫어졌다. 많은 생각이 B사이드로 돌아가려다 엉켜버린 테이프처럼 심난해지고 있었을 때, 레코드
가게 안은 에릭 클랩튼의 음성으로 좁아지고 있었다. "Layla, you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에릭 아저씨의 그 따뜻해 보이는
수염 만큼이나 푹신한 대기가 흘렀다.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아마도, 에릭 클랩튼처럼 기타를 치고 'Layla'를 부르며, 음악을 좋아하는 한 꼬마 녀석을 감싸주고 싶었다는 것을.
P.S.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픽션입니다.
jjorang2@gmail.com
일상의 음악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일상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Death Cab이 생각나면 여지없이 mp3
서치 엔진을 켜서 그 수많은 Death Cab의 음악들 중 제일 좋아하는 'Soul Meets Body'를 찾아서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곤 한다. 그렇게
하고자 했던 일, 하려던 일을 까먹게 된다.
책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 작가가 쓴 생활 지침서-'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뭐 이런 종류 따위다-에서는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주변의 사물에 눈길을
주면서 멍청해져서 시간을 버린다는 지적을 했다. 나는
대체적으로 주의가 산만한 편이다. 삶는 달걀 불을 끄러 부엌으로 가는 동선에서 티비를 마주한다거나, 흩어진 신문을 모으는 등 여차여차해서 삶은 달걀이 아닌 '구운 달걀'과 탄 내를 먹게 된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목욕을 하기 위해 물을 받아 놓고 쉐이버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다 그 앞에 놓인 수많은 씨디 들을 훑어보다
문득 조용한 음악이 듣고 싶다는 생각에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음반을 틀어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보니 물이 가득 넘쳐서 악착같은 엄마의 거의
'집착'에 가까운 구박을 들은 적이 있으니.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롭게 흐르는 에반스의 'Waltz for Debby'는 정말이지 엄마의 잔소리와는 불협화음이었다.
그래도 난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이 시간, 일분 일초라도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다. 지금
있는 이 건조하디 건조한 사무실에서 이어폰으로 흐르는 닉 고메즈의 'You Feelin' Me'는 나의
몸을 점점 침잠하게 만들어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듯한 신비로운 잔상을 만들어낸다. 팔꿈치 뒷편에
널 부러진 씨디 플레이어에선 새로 산 Spinto Band의 앨범
'Nice and Nicely Done'의 소녀가 자전거에 기댄 채 웃고 있다. 스핀토
밴드는 요 근래 만난 최고의 밴드이다. 내가 이 음악을 들었을 때 기타를 치는 어떤 녀석이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라는 말을 했는데, 아마 그 시간 그 때 즈음하여 우리는 빈티지 차림으로 파리(Paris)를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 적어도 나는 음악을 들음으로써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왔던 일상을 제거하고 음악이 깔린 인생에서 '구질구질'한 인생의 단면을 아삭아삭 씹어버릴 수 있었다. 음악은 기억을 담보하지 않는다. 보기 좋게 내가 하려던
일, 그 착잡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잠시 동안 이나마 독한 마약에 취해 쓰러진 '트레인스포팅'의 렌튼처럼, 세상은
나의 Just a 'Perfect Day'가 된다. 루 리드의
그 검은 음성 속으로 나의 눈이 스르르 감긴다.
jjorang2@gmail.com
과연 나의 손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고 있는가?
며칠 전 여름을 구실삼아 가벼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뭉친 친구 녀석들은 하나같이 나를 두고 살 좀 빼라는 말만 해댔다. 예전에
입던 옷들이 맞지 않다든가 하는 비공식적인 사실은 감지했지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으니 린치당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스트레스는 고혈압이 되고, 고혈압은 태양보다 붉은
화(化)를 돋우니 물놀이를 하면서도 썩 시원찮은 기분이 들지
뭔가.
다이어트 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나는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일, 아니
글 쓰는 행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든다. 어쩌면 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진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 자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블루바톤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름대로
원대한 포부가 있었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또한 글을 쓰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워 앨범 리뷰의 경우는 다른 필진에 비해 늦게 합류했다(어쩌면 용기가 부족한 탓이었는지도). 처음 몇 달은 글을
쓰면서 감을 익힌다고 생각했고, 일 년이 지나자 자신감이 생겼으며, 이후엔 꼭지만 주어진다면 뭐든지 쓸 수 있겠다는 배짱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음악에 관련된 글을
쓰는데 다수의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과연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리뷰를
써야 할 해당 뮤지션의 씨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만 뽑아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스트리밍 싸이트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가 허다했다. 한 달에 일정 금액만 되면 수만 명의 음원을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지 않냐는 이유와 함께. 그런 나의 리뷰는 고작 몇 천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 자괴감이 들었다. 하나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하며 유통 단계를 거쳐 비로소 정가가 매겨져
우리에게 오는 건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지 않았나.
중, 고등학교 때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벌고 한 달에 18만원을
벌면 껑충껑충 뛰어가 종로 2가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던 타워 레코드와 뮤직랜드를 찾던 것이
유년 시절의 낙이었다. 한 장당 2만원이나
했던 수입 씨디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흥분에 젖어 재킷을 면밀히 살펴보고, 또 보고
정거장을 놓친 기억이 있지 않았던가. 내 가장 친한 친구와 주말이면 드럭이라는 홍대 앞 클럽에
찾아가 고막과 콧구멍에 땟물이 배길 정도로 뛰고, 뛰고 또 뛰고 난 뒤에 배가 고파 먹던 떡볶이에
심취하여 막차를 놓치고 을지로 2가 파출소 안에서 새벽잠을 청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게 18만원이라는 돈이 주어지고,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NO’가 될 게 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은 나의 열정이 식어버렸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접히는 배와 퉁퉁 부어 오른 다리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키보드만 누르면 뭐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나의 비만도 당연했던 것을.
결국 폐부를 찌르고 굳어버린 지방 덩어리를 긁어내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닐까. 친구들
말대로 운동을 해야겠다. 걷고 또 걸어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가다 보면 유연하게 헤엄치는 나의
글을 발견할 수 있겠지. CD 정리를 다시 해봐야겠다. 이번에
존 메이어의 신작이 나온다는데 그것도 살 겸 해서 몇 장 더 골라봐야지. 주말엔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 그 어떤 장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쯤
해서 칼로리 계산법은 버려도 될 듯싶다.
안현선
jjorang2@gmail.com
펑키 브라운 쇼케이스 04/15/2006, 7PM, 롤링홀
목욕을 하고 나와서 미나는 부엌으로 뛰어갔다. 『배가 고파. 배가 고파.』양파를 썰고 계란을 깨뜨리고 하면서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 미나의 침대에서 오믈렛을 나눠먹고 그들은 한동안 맨해튼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우디 알렌의 영화 포스터처럼 잿빛으로 물든 도시의 밤풍경이, 속에 담은 슬픔을 억제하듯 단조롭게 펼쳐져 있었다. 차도로부터 들려오는 온갖 종류의 소음도-경찰차의 사이렌조차-듀크 엘링턴의 피아노 연주처럼 감미로웠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음악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그들은 다시 서로의 몸을 조금씩 만지고 쓰다듬고 음미하며 새로 시작했다. 굳이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그들 밑에는 뉴욕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정희 장편 소설 [오렌지] 중 ‘뉴욕’
아날로그의 질감을 코팅한 세피아 톤 속 도시남녀를 부르다.
펑키 브라운 쇼케이스
04/15/2006, 7PM, 롤링홀
항상 느끼지만 요즘 음악, 특히 요즘 감각이라고 말하는 어번(Urban)의 표현은 늘 한정적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고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 어번뮤직이니 정도의 그루브가 필요함은 영희에게 철수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겠고, 그 다음의 표현력에서 벽을 치며 미천한 문장력에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늘 써먹던 레씨피들-도시, 네온사인, 와인, 립스틱-이 루럴(Rural, Urban의 반대말)하게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고 식상한 어번 뮤직의 묘사들을 정공으로 써줘야 정확히 표현되는 음악이 나왔으니 쾌재가 나온다. 아니, 그것을 둘째 치고서라도 어번에 대한 제대로 된 느낌을 이제서야 만난 듯싶다. 들으면 입이 떡 하고 벌어질만한 가수들의 세션을 맡아오며 밴드 ‘시베리안 허스키’에도 있었던 엄주혁, ‘시나위’에서 활동한 바 있는 김경원, 역시나 세션 경력이 만만치 않은 박용석.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펑키 브라운]이 바로 그 주인공들. 이들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늘 걷던 도시 한복판의 에피소드들이 영화 스틸처럼 현상된다. 막 뽑아내어 윤기가 가득한 인화지의 프레임 속에서 세련된 연주에 취해 몸을 흐느적대는 도시남녀의 새러데이 나잇을 들여다본다.
#1. 함께 하는 거야 – ‘Everyday’
단어를 도시여남으로 바꿔야 할 정도로 장내는 여성들로 들끓고 있었다. 여심을 잡은 펑키 브라운의 음악을 듣고자 구두를 신고 스탠딩 공연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공연장은 이미 설레임으로 꽉꽉 대기를 메우고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그 틈에서 친구와 삼삼오오 모여 공연을 보러 온 실용음악과 지망생들. 대부분이 중, 고등학생 정도 되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얼핏 들리면서 귀를 세우게 한다. 연주 얘기를 하다 펑키 브라운의 실력에 대해 손가락을 치켜든다. 뭔가 보증수표처럼 공연의 기대감은 배가 된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항상 에피타이저처럼 등장하는 게스트의 공연으로 조명이 밝아졌다. 언뜻 들었을 때 SG 워너비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가창력으로 관객의 숨을 죽인 3인조 여성 트리오 ‘씨야’의 무대에 이어 박혜경이 나오자 반가움이 여기 저기서 거품처럼 일어난다. 공연을 축하 해주러 와 기분이 좋다는 그녀의 신곡들이 깔끔하게 입맛을 돋우어준다.
박혜경의 노래가 마치고, 각종 연예 프로그램과 CF 출연으로 낯설지 않은 목소리와 얼굴의 프라임이 능숙한 말솜씨로 쇼케이스의 포문을 연다. 그새 무대 세팅 준비가 끝나고 일사분란하게 스크린에 오늘의 주인공들인 그들의 사진들이 펼쳐진다. 스크린이 서서히 올라가자 웅성거림을 걷어내는 펑키 브라운의 등장으로 함성이 걸려진다. 모즈룩을 연상케 하는 쭉 빠진 세미 정장과 머리 스타일, 훤칠한 외모와 호리호리한 체격이 한껏 음악을 보는 재미로 더해진다. 쉐이커의 흥이 잔잔하게 감도는 연주곡인 ‘Song for My Lady’가 끝나자 기타 소리가 안 난다며 조율을 하던 보컬의 엄주혁이 부드럽게 다음 곡인 ‘Everyday’로 넘어가자 여기저기서 환호를 보낸다. 안개가 스르르 퍼지면서 어슴프레한 저녁을 연상시키는 무대에 응수하는 피아노 선율과 기타의 멜로디가 인상적인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앨범 작업하면서 가장 먼저 만든 곡이기도 하면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랑, 자연스럽고 미묘한 감정을 풀어냈다.
쉴 새 없는 무대 때문인지, 관객의 열기가 뜨거웠는지 베이스의 김경원이 더위를 감추지 못하고 옷을 벗자 여자 팬들의 좋아라 하는 끼약 소리가 페이소스로 터진다. 공연의 사회자인 프라임도 슬슬 궁금증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내츄럴 사운드 밴드, 펑키 브라운”이라는 그들을 각각 소개하면서 공연의 세션을 도와주고 있는 키보디스트를 두고 ‘대한민국 수퍼 건반’이라 칭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엄주혁. ‘펑키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다는 프라임의 말에 홍대 근처에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 ‘Brown’이라는 단어의 느낌이 좋아 짓게 되었다고 의외의 답을 내 놓기도 했다. 가끔 공짜 커피를 마신다며 슬쩍 웃으면서 ‘Funky’는 그루브감을, ‘Brown’은 동양인을 뜻한다는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간다. 동양인도 훵크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향기나는 그루브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모습에서 빛이 난다.
막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펑키 브라운만의 톤으로 불러내는 클래식‘Just the Two of Us’가 울려 퍼지자 분위기는 한층 고양된다. 절묘하게 마무리를 다음 곡으로 이어가는 드럼의 박용석이 분위기를 캐치한다. “같이 춤춰요.”라는 말에 팬들은 하나 둘씩 몸을 들썩이며 ‘Polaroid’에 몸을 맡긴다. 마치 뜀박질치는 듯한 베이스의 그루브가 인상적이다. 중간에 서 있던 코러스가 밖으로 나오면서 눌려있던 소름이 확 돋아난다. 들썩이는 키보드와 관객에게 손짓으로 열광적인 호응을 유도하는 베이스와 드럼이 일심동체가 되어 리드미컬한 무대를 선사한다.
땀이 식기도 전에“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며 출연한 하림 덕택에 땀방울은 다시금 도르륵 떨어진다.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을 멋스럽게 걸치고 나와 ‘Old Friend’를 들려준다. 하림의 즉석 하모니카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몇이나 된단 말인가. 자석같이 착착 달라붙는 두 사람의 호흡이 관객을 집중하게 만들고, 그의 하모니카 연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제목 그대로, 몇 년 친구이든 세월을 숙연케 하는 따스한 우정이 묻어나는 곡이다.
이윽고 하림의 솔로 무대가 이어진다. 키보드에 앉아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2집 앨범을 도와준 펑키 브라운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나지막이 ‘출국’의 기억으로 관객을 되돌린다. 이따금씩 마이크 문제로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마치 그의 목에 마이크가 장착된 마냥 음성은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가사 하나 하나에 진심이 우러나오는 무대에 사람들은 숙연해지고 하림은 미소로 답한다.
또 한차례 게스트의 시간이다. “이 사람의 음악을 듣고 바지가 커졌어요.”라는 소개 뒤에 의외의 출연진인 현진영이 나와 월척을 만났다는 듯이 관객들은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음악과 완숙미 넘치는 보컬을 선사하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는 전성기 때와 다를 바 없다. 교회에서 알게 되어 친한 동생들인 펑키 브라운의 형인 그도 앨범 마무리 작업 때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마지막 곡으로‘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부르며 90년대의 정감 어린 후드열풍을 재생해낸다. 환호성이 무대를 찌를 무렵, 베이스의 김경원이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깜짝 출연하는 재미를 연출하기도 했다.
#2. 좀 더 솔직해져 봐 너의 모습이 아냐 – ‘다신’
공연이 중반 이상을 달리고 있지만 관객들에게서 전혀 힘든 기색을 발견할 수 없다. 장시간 스탠딩에도 불구하고 발이 아픈 것도 잊은 채 구두를 신은 여성 팬들은 쉬는 내내 오빠들이 멋지다는 감탄사 일색이다. 새로운 의상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 펑키 브라운의 모습에 그녀들의 눈이 화사해진다. 이때쯤이다 싶었던 때 프라임이 나타나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기억에 남는 팬이 있느냐는 질문에 공연 중 선물로 밥통을 준 팬이 있다는 말에 장내에 웃음이 터진다.
담소의 잔재를 쓸어 내리는 ‘후회’라는 곡이 공연의 2막을 짙게 드리운다. 드러머 박용석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누구나 들으면 다 알만한 MBC FM 로고 송의 목소리인 우현정의 보컬이 적재적소에 드리워져 소울풀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공연 내내 코러스 라인에 서서 함께 노래한 우현정이 전면으로 나와 특히나 남학생들의 갈채를 받았다.
“노래 듣기 좋은가요?” 하고 수줍게 말을 건네는 엄주혁은 못내 아쉬운지 고마운 마음을 일일이 전한다.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마무리를 하려는 펑키 브라운. 앨범의 마지막 곡이기도 한 ‘다신’으로 인사를 대신 한다. ‘Everyday’이후의 타이틀 곡으로 점쳐지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기억 속에 오래 침전된다. 마치 커피가 바닥을 보여 혀로만 남은 기운을 감지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아쉬움이 담담하지만 부드러운 보컬에 실리고, 거리의 불빛은 하나 둘씩 꺼질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다신 다음 곡을 기대할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다신’이 새롭게 들려온다. 기대치 못한 선물을 받은 즐거움에 분위기는 더욱 더 뜨거워진다. 두터워서 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앙상블은 경쾌함을 유지한 채 마지막까지 달린다. 쉬지 않는 잼의 향연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역시나 관객들의 앵콜 외침이 한 번 이상은 나와주는 타이밍이다. 조금은 시간이 지체되는 기분이다. 정말 끝난 것일까? 하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우직한 팬들은 “앵콜! 앵콜!”을 목이 터지도록 외친다. 캬바레에서 봄 직한 반짝거리는 의상으로 기대를 저 버리지 않고 나온 펑키 브라운은 관객의 손은 머리 위로 올리며 박수를 유도한다. 연주는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제대로 노는 분위기를 타면서 가수 나미의 히트곡인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이어진다. 멤버 전원이 큼직한 선글라스를 맞춰 쓰고 나타났고, 한 남자 코러스가 영화 ‘킬빌’을 연상시키는 노란 츄리닝을 입고 나와 행인 흉내를 내며 코믹 댄스를 선보인다.
“놉시다!”라고 외치며 장내를 클럽 분위기로 몰고 가는 펑키 브라운. 조용하던 키보드마저 기다렸다는 듯 ‘날아라 수퍼보드’의 손오공이 된 마냥 “치키치키챠카챠카쵸코쵸코쵸.”를 소화해내며 랩에 춤까지 곁들인다. 숨을 고를 여유도 없는 펑키 타임이 빙빙 돌아간다. 반짝이는 의상만큼이나 화려한 파트 별 솔로가 클라이막스를 이루며 관객에게로 던져진 기타 피크가 관객석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지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알람 시계가 덩그라니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스탠드만 고요히 밝아오는 늦은 밤. 다 마치지 못한 글의 중간 부분에 커서가 놓여진 노트북과 침 자국이 묻어난 장편소설이 읽은 데까지 구겨져 있었다.
‘배가 고파. 배가 고파. 양파를 썰고 계란을 깨뜨리고 하면서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의 구절에서부터 다시금 시작하는 뉴욕의 풍경과 사랑으로 번민하는 젊은 남녀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따라간다. 바랜 갈색 톤이 인상적인 재킷 속 그들의 음악을 꺼내어 들어보니 꿈을 꾸는 듯하다.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 걸까. 꿈을 듣는 기분으로 아날로그의 질감을 코팅한 세피아 톤 속 도시남녀를 부르다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찬찬히 커피를 따라내렸다.
글쓴이_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펑키 브라운 쇼케이스의 공연 취재를 허락하여 주신 [Insbase]의 정성엽 대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펑키 브라운 1집 [Brown Days]
1. Song for My Lady (Inst.)
2. Everyday
3. 이런날
4. Paranoid
5. Old Friend
6. (Feat. 하림 & Kentaro Kihahra)
7. 이제는 그대와
8. Let’s Dance (Feat. 김성수 & 조명진)
9. Forever with You (Feat. 김반장 & 정상권)
10. Another Day
11. 후회 (Feat. 우연정)
12. 다신/The New Beginning (Feat. 김반장, 조명진 & 정상권)
연진 인터뷰 - 솔로 앨범 낸 연진과의 이야기, [Me & My Yeongene]
그러니까 오늘을 기점으로 어제, 나는 연진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 입시를 마치고 의기소침해져 찾아간 당시 이대 후문 근처 클럽 빵에서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을 놓고 좋고 싫음과, 쓰고 시름을 나지막이 뱉어냈던 진이라는 방울만한 체구의 그녀는 나의 의기소침함을 벗겨주었고, 발개진 온몸으로 막연하게 나만의 얼터너티브를 태웠다.
난 그녀가 라이너스의 왕연진인줄 몰랐고, 생글거리며 바카락을 노래하는 그저 연진인 줄 몰랐다. 진의 생로병사를 궁금해하던 5년 사이에 줄곧 나는 진의 목소리와 함께 했었고, 우연을 과장하여 필연을 가장한 인터뷰를 가졌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아주 잠시나마 함께 한 사람일 뿐인데, 잃어버렸던 이복 언니를 찾은 마냥 무언의 짠과 찡이 동시에 오고갔다.
연진 인터뷰
- 솔로 앨범 낸 연진과의 이야기, [Me & My Yeongene]
삼삼오오 가정집이 모여있는 홍대 외진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비트볼 레코드는 마치 비밀의 화원과도 같다. 지도 없이 무언의 열쇠에 이끌려 인도되는 공간에 들어선 순간, 화이트보드의 글씨가 들어온다. 연진의 앨범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모양이다.
20세기 대중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인 버트 바카락. 클래식에 비견한다면 조지 거쉰과도 같은 그의 존재가 연진의 첫 번째 솔로작인 에서 회자되었다. 어쩌면 연진에게는 그리 낯선 작업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BJ 토마스의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같은 노래라든지, CF 삽입곡으로 쐐기가 박힌 ‘Paper Mache’는 버트 바카락의 곡을 리타 칼립소가 리바이벌 한 것이었기에. 그 유명한 힙합 뮤지션인 닥터 드레(Dr. Dre)마저 대중의 클래식에 바운스를 입힐 것이라는 소문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바카락의 곡을 만난 연진으로써는 가 대중과 한 발짝 더 친숙해질 수 있는 신뢰감 있는 프로젝트임엔 분명했고, 아니나 다를까 앨범이 발매되기도 전에 예약의 손길이 심심치 않았다.
아직 연진은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예정 시간에 다다르기 전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앨범 커버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겉 표지로는 눈을 지긋이 감고 살포시 턱을 갠 연진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으며, 메인 부클릿엔 약간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짓는 실제 사진이 실려있다. 사진 찍히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연진의 얼굴은 앨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고 오 분이 정확히 지나서 예정 시간대로 조우한 그녀는 사진에서보다 가냘픈 체격에 베이비 로션 모델을 해도 될 만큼의 하얗고 고운 피부를 지녔다. 약간은 바래진 청바지를 적당한 폼으로 입었고, 다분히 팬시한 큰 시계와 노란색 티셔츠를 깔끔하게 매칭했다.“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하며 인사를 건네는 연진은 정확히 시간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도착한 나를 수줍게 웃으며 맞아준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의례 첫만남이란 항상 어색하면서도 그 정적을 깨기 위해서 오고 가는 클리쉐(cliché) 때문에 피식하고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연진도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토막 내어진 간단한 물음을 에피타이저로 맛보며 “맛있어요.”하며 생긋 웃어버리는 그녀에게 생소한 전채를 내 놓아도 좋을 듯싶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아티스트와 곡을 트리뷰트 형식으로 낼 계획을 갖고 있었던 비트볼의 송 북(Song Book) 프로젝트의 일환인 는 처음부터 연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만일 버트 바카락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아마 기타를 치고 제가 쓴 곡을 냈겠죠. 하지만 꼭 자작곡을 고집하고 싶진 않았어요. 아티스트가 처음부터 남의 노래 하느냐는 편견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버트 바카락의 음악이 워낙 완성도가 뛰어나니까 제 곡보다는 좋지 않겠어요? 하핫.”
멋쩍게 말하는 연진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팬 아닌 팬들이 있다. 일년 전, 라이너스 담요 시절에 만난 영국 글래스고 출신의 ‘BMX 밴디츠’는 국내 공연을 하면서 연진을 알게 되었고 레코딩을 하자는 제의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렇게 만들어져 국내에 선보인 앨범이 였으며, 이후로도 그녀의 영국 행을 간절히 원했던 그들로써는 러브레터를 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브라이언 윌슨 트리뷰트 앨범을 맡아본 경력이 있는 BMX 밴디츠의 더글라스 스튜어트가 조율을 한 이번 앨범에서 레코딩 중 눈물을 찔끔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몸이 많이 피곤했던 어느 날엔가 녹음을 해야 했었어요. ‘Me, Japanese Boy, I Love You’를 부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비도 오는 거에요. 몸의 상태와 당시의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했는지는 몰라도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어요. 근데 밖에서 제 노래를 듣던 BMX 밴디츠 멤버들이 노래를 듣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맺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죠.
실제로 그 다른 이들에는 BMX 밴디츠 뿐만 아닌 영국 인디 팬들에게는 꿈만 같은 벨 앤 세바스챤(Belle and Sebastian)과 바셀린즈(Vaselines), 그리고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이 있다. 손 닿지 못할 머나먼 뮤지션처럼 느껴지는 그들을 두고 ‘아저씨’라는 호칭을 써 가면서 스스럼없이 함께 해 온 글래스고의 일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말투처럼 조금 딱딱한 느낌이잖아요. 특히 제가 갔던 스코틀랜드(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 속한다.)가 더 그랬어요. 독일 같다고나 할까? 동양인들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처음엔 많이 낯설었죠. 그런데 저와 함께한 분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유머러스 했어요.”때로는 그녀의 ‘아저씨’애교가 먹히지 않은 사람 중 유일한 이는 틴에이지 팬클럽의 노먼 블레이크(그는 틴에이지 팬클럽의 멤버이면서 동시에 BMX 밴디츠에 속해있기도 하다.)였다. “노먼 블레이크 아저씨는 녹음 전에 와인과 치즈를 가지고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린 뒤에 약간 술기가 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하세요. 뭐랄까, 신사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였어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편안함을 느꼈죠. 종종 집에 초대도 해 주시기도 하고……” 그 어떤 팝스타를 만나더라도 연진은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고, 그들 또한 연진에게 있는 그대로의 살아있는 팝을 들려주었다. 밴드 멤버들 각자 다른 직업이 있는 관계로 보름 정도의 부활절 휴가(영국은 부활절 휴가를 길게 받는다.) 기간 동안 모든 작업을 척척 소화해 낸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고 연진은 말한다. “2주 정도 데모 작성을 했고, 녹음 할 때 그분들께 들려드리면서 제가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했더니 “이렇게?”하면서 드르륵 드럼치고, 기타치고 너무 쉽게 하는 거에요. 마치 음악 선생님이 너 이거 해, 저거 해 하면 알아서 다하는 학생들처럼요. 처음 듣는 노래를 연습도 안하고 하루 만에 다 마스터해버렸어요. 국내의 경우는 노래 한 곡만 하려 해도 많은 시간과 연습을 투자하는데 그들은 마치 일상 생활처럼 연주 하고 노래하더라고요.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싶었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연진은 영국에서 소규모의 공연을 했고, 때로는 청중이 되기도 했으며 거리낌없이 그네들과 어울렸다. 가끔 밴드 멤버들과 술집에 찾아가 버트 바카락을 녹음하러 왔다며 소개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화제거리가 생겼고 관심을 표명했으며, 두 번 정도 열린 작은 클럽에서의 공연에서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한 대만으로 자신의 다락방에 글래스고 사람들을 꽉꽉 채우기도 했다. “ 술 먹고 올라가서 연주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여럿 데려오기도 하면서 관객 또한 그들의 친구가 되는 분위기가 부러웠어요.” 특히 그녀가 부러워했던 것은 글래스고 출신 밴드들의 긴밀한 우정. 앨범의 프로듀서인 더글라스는 이 지방의 터줏대감이자 맏형으로써 지역 인디 밴드들의 유대감 형성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 노력이 글래스고 문화 발전의 힘이 아닐까? “더글라스는 본인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음악을 항상 많이 듣고 포용해요. 우리나라도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 같이 영향력 있는 밴드들이 그런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또한 는 연진을 알아본 더글라스 스튜어트의 선견지명이 그대로 적중한 앨범이다. 그가 선별하여 실린 버트 바카락의 히트곡뿐만 아니라 연진의 목소리를 듣게 될 팬들에게 보낸 그의 메시지는 씨디 트랙이 넘어갈 때마다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저는 그녀를 제가 함께 작업했던 세계 최고의 뮤지션들과 대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Gene, 연진의 영어 이름)은 굉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자 감성적인 음악가입니다. 그녀에게는 멜로디, 리듬, 하모니 그리고 가사를 진솔하게 만드는 본능적인 이해력이 있습니다.’ 이에 응수하는 연진이 본 더글라스에 대한 대목이 재미있다. “더글라스 아저씨는 굉장히 로맨틱해요. 본인의 장르를 ‘울트라 로맨틱 송’이라 칭할 만큼 나이에 맞지 않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분이에요. 별종이라고나 할까요? 가끔 ‘이 양반 주책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웃음) 그 분이 나타나면 주위에 햇살이 가득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고 주변인들이 말씀하세요.”그래서일까? 를 들으면 연애하지 않아도 연애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잠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인터뷰를 하면서 대략 한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슬쩍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친한 선배의 전화인가 보다. 연진은 인터뷰 할 때나 전화 받을 때나 나직하게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노래 부르는 목소리와 매우 다르다고 느끼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이나 상대를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말을 할 때 수식어를 잘 쓰지 않는 것도 솔직 담백한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전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것을 좋아해요. 이런 것을 하다가 또 저런 것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만 완전히 시부야케 쪽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하죠.” ‘라이너스 담요’로 이미 고정 팬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지만 같은 모습을 반복하는 것을 경계한다. “밴드 곡의 색깔과 맞추려다 보니 이런 목소리가 나온 거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목소리는 아니에요. 요즘엔 R&B 음악도 듣고 있는데 (웃음) 너무 소녀 같고, 애기 같은 음악 보다는 여인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특별히 목 관리를 위해 신경 쓰지 않냐고 묻자 그런 것 없다며 털털하게 웃어넘긴다. 오히려 감기가 걸렸을 때 그 느낌을 살리고 싶어 그냥 녹음을 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버트 바카락을 부르기 위해 혈혈단신 스코틀랜드로 떠난 소녀의 로망이 앨범 표지로 그려진 일러스트처럼 어렴풋이나마 연상된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는 대리 만족감을 선사한다. 물론 본인에게는 설렌다기 보다 막상 들이닥친 미완의 추억 같은 것이겠지만, 말하고 있는 연진의 눈빛에서 스틸 사진을 보는 듯 생동감이 파닥댄다. “글래스고의 센트럴 스테이션이 기억에 남아요. 거기에 유명한 커피숍이 있는데 앉아 있으면 모그와이(Mogwai, 영국 글래스고 출신의 실험적 성향을 지닌 밴드) 멤버들도 보이고, 그 외의 유명인사들이 오면 ‘쟤가 누구다.’라며 알려줄 때마다 신났어요.”시간이 나면 공연을 보기도 한 연진의 마음속에 가장 들어온 아티스트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파이스트(Feist). 밤새 맥주를 홀짝대며 공연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메모를 끼적거릴 모습이 사뭇 연상되니 슬쩍 미소가 샌다. 앨범 속지를 살펴보면 그리 많은 사진이 실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앞서 말한 일상의 앞 페이지를 슬쩍 보는 기분이다. “부클릿 맨 앞장에 있는 사진은 글래스고 시내에 있는 다리에서 찍었는데, 옷 사러 나왔다가 다리가 있어서 마땅한 사진이 없던 차에 찍었어요. (웃음)”
오늘따라 시간이 가늘게 느껴진 적도 없다. 대개 부담스런 상대를 만나면 한 시간이 열 시간으로 비대해지기 마련인데, 오늘만큼은 한 시간도 일 분처럼 가늘다. 예전에 비해 무척이나 말라버린 연진의 팔목처럼. “영국에서 일이 바빠 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살이 많이 빠졌죠. 친구들은 ‘그게 영국이 네게 준 선물이다.’라고 말하곤 해요. (웃음)” 가는 팔목만큼이나 눈에 들어오는 하얀 피부의 비결을 물어봤더니. ‘돼지비계와 닭 껍질’을 말해 한참을 웃게 된다. 그리고 재치 있는 대답만큼이나 상응하는 연진의 실제 생활도 누구나 다를 게 없지만 흥미롭다. 통화 내용에서 얼핏 나온 ‘IKEA(세계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만 듣더라도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미적 감각이 있음에 분명했다. “집에서 무언가 만들어서 -과자나 파이 같은 것들- 해 먹는 것도 좋아하고, 제가 한 음식을 친구들에게 갖다 주는 것도 좋아해요.” 또한 그녀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온전한 감성의 충전이다. 어릴 때부터 쳐왔던 피아노를 연주한다거나, 어쿠스틱 기타를 갖고 놀기도 하며 음악을 들으며 적당히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실용 음악을 따로 배우진 않았어요. 피아노는 어릴 때 배운 클래식이 전부고, 기타는 제 메인 악기가 아닌데 그냥 치고요.” 대학 때의 전공도 호텔 경영학과였다고 하니 앨범의 프로듀서인 더글라스 스튜어트의 말에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에게는 멜로디, 리듬, 하모니 그리고 가사를 진솔하게 만드는 본능적인 이해력이 있습니다……’
“연인이 있다면 연인이 그 대상이 될 거고, 저는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괴로워서 만들고, 행복하면 행복해서 만들고…… 그런 모든 감정들이 계기가 되고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그녀에겐 행복의 요소가 더 많아 보인다. 음악을 하면서 때로는 불특정 다수가 던지는 비난의 화살을 막아주는 방패 같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미 연진은 이번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동료뿐만 아니라 소중한 자산을 얻게 됐다. “버트 바카락은 음악적으로 멘토 같은 존재이자 동시에 내가 바꿔보고 싶어한 도전의 대상이었어요. 그런 버트 바카락을 노래하기 위해 건너간 영국에서 인맥뿐만 아니라 제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된 것이 소중해요. 나중에 더 괜찮은 기회를 가지고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기도 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값진 시간이었답니다.”앞으로의 꿈이 뭐냐는 마지막 질문에 수줍게 ‘직접 만든 물건과 음식이 있는 카페를 하는 것’이라고 말함과 덧붙여 부모님께 얘기했더니 젊었을 때 돈 벌고, 나이 들면 하라는 핀잔만 받았다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는 다가오는 7월 7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릴 쇼 케이스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서기 전 손을 흔들며 ‘안녕!’의 인사를 남기는 연진을 바라보며 다시금 5년 전, 늦은 겨울 밤이 생각났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 하나 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리엔 연진과 내가 있었다. 를 플레이 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오롯이 두 사람의 공간을 이어간다. 지금, 몹시 행복하다.
인터뷰 및 글_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인터뷰에 귀중한 시간 내어주신 연진과 비트볼 레코드 이봉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연진이 말하는 속 내츄럴 사운드의 주역들
1. Whistle
아저씨들이 휘파람을 굉장히 잘 부세요. 휘파람 불 때 피아노처럼 음정이 정확한 것은 처음 봤어요. 피치도 하나도 안 틀리고 소리도 매우 커요. 꼭 기계로 한 것 같이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2. Ukulele
‘유크’라고도 불러요. 그 쪽 사람들도 유클레레를 좋아하더라고요. 소리가 매우 맑고 예뻐 제가 꼭 쓰고 싶다고 해서 사용하게 되었죠. 굉장히 조그마한 현악기인데, 하와이안 기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3. Kellymin
유진 켈리 아저씨가 입으로 ‘우왕~우왕~’ 소리를 내셨어요. 그래서 유진 켈리의 켈리에다 테레민(Theremin, 러시아의 음향 물리학자인 레온 테레민이 발명한 전자 악기. 연주자가 움직이는 손의 위치에 따라 주파수가 달리하여 마치 톱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의 민을 붙여서 켈리민이 된 거에요. (웃음) 이 악기를 켈리민으로 하자고 한 건 데이빗 스캇 아저씨인데, 사람들이 모두 웃으면서 기발하다고 했어요.
4. Irn Bru-Can
스코틀랜드의 소다 음료를 아이언 브루 캔(Irn Bru-Can)이라 해요. 코카콜라보다 국산 음료가 많이 팔리는 곳이 스코틀랜드일 정도로 그 사람들은 아이언 브루를 정말 많이 마셔요. 그 아이언 브루가 스튜디오에 널려 있어서 눌렀는데 똑딱 소리의 느낌이 좋아서 쓰게 되었어요.
5. Salt Shaker
솔트 쉐이커(Salt Shaker)는 제가 식사를 하다가 소금 통을 막 흔들었는데, 그 소리 너무 좋으니 꼭 넣으라고 해서 솔트 쉐이커가 되었어요. (웃음)
6. Ho-Ho-Ho
‘The Bell that Couldn’t Jingle’을 들어보면 산타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이 들리는데 그게 바로 ‘호-호-호’ 랍니다.
7. French Horn
이 악기를 밴드 멤버 중 한 분이 갖고 계시더라고요. 일반 혼에 비해 소리가 더 맑고 부드러워요. (프렌치 혼은 소리가 멋있지만 음정 찾기가 매우 어려운 악기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절대음감 없이는 악기 불기가 매우 힘들고, 길이 또한 2미터가 넘어 폐활량이 좋아야 하고 그 무게를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8. Winter Winds
입으로 ‘후~후~’ 불어서 겨울 바람 소리를 낸 것을 윈터 윈즈라 붙였어요. (웃음)
연진
(비트볼, 2006년 6월)
01. Lost Horizon
- 버트 바카락과 그의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할 데이빗의 곡. 엇박이 강한 원곡을 연진이 편하게 박자를 맞춰 다시 불렀다. 연진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02. Paper Mache
-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이 1970년에 낸 앨범 에 수록된 곡으로써 역시 할 데이빗과 완벽한 팀워크를 이뤄냈다. 이 앨범에는 연진이 부른 ‘I’ll Never Fall in Love Again’과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도 실려있다.
03. Tower of Strength
- 진 맥대니얼스(Gene McDaniels)에 의해 불려진 1961년도 히트곡. 이 곡에서는 유일하게 할 데이빗이 작곡에 참여하지 않고 가사만 실었다. 원곡은 굉장히 소울풀한 느낌을 준다.
04. Me Japanese Boy, I Love You
- 할 데이빗과의 작품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곡으로써, 노래를 부른 가수 역시 바비 골스보로(Bobby Goldsboro)라는 생소한 이름이다.
05. Wives and Lovers
-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회고된 곡이지만, 줄리 런던(Julie London)의 버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엘라 피츠제럴드 라든지 웨스 몽고메리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이 곡을 불렀다.
06.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 이 곡 역시 많은 이들에 의해 불렸지만 디콘 블루(Deacon Blue)와 쳇 앳킨스(Chet Atkins)가 부른 것이 잘 알려져 있다.
07. It Doesn’t Matter Anymore
- 릭 넬슨(Rick Nelson)의 1967년 작에 실렸으며, 2004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에 다시 실리기도 했다. 이 곡을 BMX 밴디츠가 그들의 앨범에도 실었으므로, BMX 밴디츠의 음악을 평소에 들어본 이들이라면 친숙하게 다가올 넘버다.
08. Try to See It My Way
- 이 곡 역시 릭 넬슨이 불렀으며, 영화 사운드트랙인 에 실렸다.
09. Reflections
- 버트 바카락의 1973년도 작인 에 실린 곡이다.
10. Promise Her Anything
- 탐 존스(Tom Jones)가 1966년에 부른 로큰롤 송이며, 할 데이빗의 가사가 돋보인다.
11. The Bell that Couldn’t Jingle
- 바카락의 크리스마스 앨범에 매번 실린 곡이며,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1964년도 작인 에 먼저 선보였다.
12.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 연진이 부른 곡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인 ‘내일을 향해 쏴라’의 테마로 흘러나왔고, 이후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리바이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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