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가 교복을... 벗지 않고 신발 주머니 달랑달랑 거리며 뛰어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하셨... 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으시고 내게 용돈을 주시면, 그 돈을 꼬깃꼬깃 모아서 저금통에 한 가득 넣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목돈으로 질펀하게 떡볶이 파티를 하면서 마치 자기가 단지 '쐈다는' 이유
하나로 형님이 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는데, 그런 건 사돈의 팔촌이 스치고 지나간 행인만큼 내겐 관심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게 유일한 삶의 오아시스는 학교가 파한 뒤 찾아가는 레코드 가게였고, 지금은 MP3가 판친다지만 그 땐 자기장에 녹음된 테이프가 수두룩했던
시절이었는지라 손에 먼지 묻혀가며 테이프 보는 재미에 빠져, 바깥 세상에선 어떤 미친놈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는 말을 생방송 뉴스
도중에 남겨 장안이 그 얘기로 시끄러워도 내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귀엔 도청장치도 없었고, 오로지 눈 앞에 보이는 음악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이거 함 들어볼래?"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Eric Clapton의 MTV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이 담긴 앨범을 건네주었다. 2단으로 접혀 말끔하게 제목이 보여지는 세로 부분이 파란색이었다. 그건 어김없이 소니(Sony)를 뜻했다. 순전히 색깔의 취향이지만 우매하게도 나는 이 색깔이 빨간색이면 잘 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빨간색의 비엠지(BMG)는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내가 안 사줘서 망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에릭 클랩튼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그의 놀라운 기타 연주에는 클랩(Clap)해 주고 싶었다.
누구는 음악으로 빠지게 되는 입문 과정이 과도하게 입을 빵끗대는 오선생의 <굿모닝
팝스>라고 하면서 다년간 FM을 통해 다져진 영어 실력으로
이어폰을 낚아채더니 에릭 클랩튼의 'Layla'를 듣고는 그야말로 에프엠으로 해석을 하고 잘난체하는
꼬라지를 잘근잘근 씹어서 쾍 뱉어버리려던 찰나에 내게 에릭 클랩튼을 추천해 주던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왠 일인지 오늘 내게 말을 걸려고 한다. 쭈뼛하며 어색한 마음 흐트러트리고자 테잎 몇 개를 들락날락 거리며 만졌는데 각이 빗나갔는지 뭉텅이로 와락 떨어지고
말았다. 구슬치기 하면 수 십 개는 땄을 눈물방울이 소리 내어 떨어졌다. 왜, 사람이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까지
생각나면서 자기비하를 하기 마련인데 오늘이 딱 그랬다. 테이프를 떨어뜨려 소란을 일으킨 내가 싫었고,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테이프를 만지작 거리다 떨어뜨린 내가 싫었다.
심지어는 그 재수없는 녀석처럼 팝송 가사 하나 해석 못하는 내가 싫어졌다. 많은 생각이 B사이드로 돌아가려다 엉켜버린 테이프처럼 심난해지고 있었을 때, 레코드
가게 안은 에릭 클랩튼의 음성으로 좁아지고 있었다. "Layla, you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에릭 아저씨의 그 따뜻해 보이는
수염 만큼이나 푹신한 대기가 흘렀다.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아마도, 에릭 클랩튼처럼 기타를 치고 'Layla'를 부르며, 음악을 좋아하는 한 꼬마 녀석을 감싸주고 싶었다는 것을.
P.S.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픽션입니다.
jjorang2@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