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던 당신, 간만에 힙합 음악이 흘러나와 고개를 까딱이고 있다. 이윽고 공연을 마친 힙합 뮤지션이 이런 말을 한다.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임(Rhyme)이죠.” TV를 보던 당신, 까딱이던 고개가 굳어진다. 도대체 라임이 뭐야? 궁금해진 당신, 검색 엔진을 열고 ‘라임’의 뜻을 찾기 시작한다. 지식 검색의 내공인 들은 저마다 친절한 답변으로 당신을 라임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또 다시 "P-Type"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미궁에 빠진다. 도대체 피타입은 뭐길래 라임 하면 피타입이 나오는 거야? 지식 검색의 그들은 라임 질문에 하나같이 "피타입"으로 입을 모은다. 어불성설인가 싶어 찾아간 피타입의 싱글 Soulfire 발표 기념 쇼케이스 현장. 힙합 1세대 형님으로 통하는 "가리온"을 비롯하여 힙합 음악의 차세대 주자들이 모두 모여 피타입을 응원한다. 간혹 지식 검색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된다고 하지만, 이번엔 그들이 정확했다. 짧고 굵게 표현하자면, 피타입은 에너지와 기술이 절묘하게 조합된 랩을 하고 있었다.
블랙 가스펠을 추구하는 CCM 그룹 "헤리티지" 뿐만 아니라, 최근 새내기 힙합 프로듀서로써 무섭게 올라오고 있는 프라이머리의 밴드 "프라이머리 스쿨"의 피쳐링을 한 피타입.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9월에 낸 싱글 Soulfire를 통해 1집과는 다른,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그를 10월에 만났다. 조금 오래된 만남이지만, 곧 다가올 내년 2월 그의 정규 앨범 발매에 대한 일종의 에피타이저가 되기엔 이 시점이 최고라는 핑계거리를 대면서 뒤늦게 피타입과의 대화를 정리한다. 사실 정리할 것도 없이, 말이 곧 글이 되는 그는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였다.
피타입에 대해 알고 싶은, 피타입을 통해 듣고 싶은 몇 가지 진실
Single
싱글이 갖는 의미는 1집에서 2집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중간 교두보 역할인 것 같아요. 1집에서 9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힙합 사운드와 로우파이(Lo-Fi)하고 빈티지한 사운드를 추구했다면, 2집은 요즘 감각의 하이파이(Hi-Fi)한 사운드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1집과 2집의 갭이 많은데(1집 [Heavy Bass]는 2004년에 발매) 이번 싱글에서 그런 갭을 메우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싱글은 그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의도된 하나의 패키지를 발매하기 전, 그 작업을 수월하게 해 주는 중간 단계이기에, 아티스트들에게는 자기 컨셉과 의지를 투영할 수 있는 단편 정도의 의미가 있는 좋은 작업입니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에게는 효용성이 있어도, 싱글 시장이 팬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 다가설 수 있으며, 더 넓어질 지에 대한 비즈니스적인 청사진은 명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네요.
Lo-Fi Meets Hi-Fi
사람들 놀라지 않게, 놀람이 실망으로 다가가면 안되니까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음악을 고른 곡들이 로우파이와 하이파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들이죠. 만약 2집에서 새로운 컨셉을 들고 나왔는데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변명으로 감안을 하고 의도적으로 했다 말할 수 있어요. 비트적으로 많은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기존의 틀을 너무 벗어나 버리면 사람들이 피타입이 하던 음악을 생각할 때 혼란스러워 할 수 있거든요.
Release Date
프로덕션 단계라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일단 내년(2007년) 2월 초에는 2집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MP3
당연히 기분 좋진 않죠. 내가 발품 팔고, 피땀 흘려 만든 그게 누구의 손에 공짜로 들어간다는 게 당연히 기쁜 일은 아닌데, 이걸 단순하게 부정적으로만 보기에도 너무 어려운 문제에요. 어떻게 해야 싶을지 제 입장은 미온적이죠. 그렇지만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어떤 공급자의 제품이 수요계층에게 공짜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비상식이거든요. 자본주의가 깨지지 않는 이상, 제도적인 방편이 필요한 거죠. 그러나 제도적인 방편으로 막지 않고서 소수 공급자들의 연대나 의지만으로 이 흐름을 막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만큼 어려운 겁니다.
Sound of Heavy Bass N Soulfire
기술적인 부분으로만 말씀 드리자면 로우파이 소스와 하이파이 소스의 차이입니다. 음역대가 단순히 많음과 적음을 논하는 건 무리고, 일단은 만드는 기법에 있어서 1집 앨범에 사용되었던 곡들은 아주 원시적인 작법을 고수했어요. 순수하게 사용된 모든 비트들의 재료가 LP에서 나온 거죠. 아주 순수하게 그 소스만을 활용해서 음악을 만든 아주 전형적인 힙합 사운드가 1집이었다면, 2집에서 추구하는 것은 메카닉(Mechanic) 시스템, 즉 컴퓨터를 활용한다거나 다른 전자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많이 도입한 거죠. 어떤 것은 LP 소스가 믹스되고 혼재되어 있는 양상도 있지만, 순수하게 하이파이 소스로만 간 곡도 있습니다. "부메랑" 같은 곡에선 LP소스를 전혀 쓰지 않고 컴퓨터 소리로만 작업했어요. 90년대 중반의 미국 힙합 전성기 때가 그런 전통적인 작업방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 메카닉의 발달에 의해 그런 환경이나 사운드가 깨져왔거든요.
어떻게 보면 힙합의 발달은 메카닉의 발달과 같이 걸어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런 점을 충분히 반영한 변화인 거죠. 저도 그러한 진보된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제대로 된 힙합을 또 한 번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뭐가 더 맞고 덜 맞는 건 없는 것 같아요. 2집에서 제가 두 가지를 추구했다면, 그 두 가지가 제 마음에 들어서 한 거죠. 뭐가 더 맞았다면 그것만 했겠죠. 아티스트가 소화할 수 있는 그릇이 커진 거지 뭐만 선택할 수 있고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Primary
엘리트죠. 제가 1집을 낼 때는 위의 분들에게 많이 배웠는데, 저도 이제는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 후배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 어린 친구들 중에서 재목이 될 만한 친구들을 많이 찾았는데 그 중 프라이머리가 그런 친구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후배였고, 음악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온 친구에요. 선배 세대들이 보여줬던 하드워킹(Hard-Working)의 어려움을 과감하게 정면으로 뚫고 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과감하게 밀고 부쳤다는 점에서 프라이머리를 높게 평가합니다. 물론 나이는 어리지만(82년생) 그런 하드 워킹에 전면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흑인 음악에 대한 플레이어로서의 이해도도 있기 때문에 2집에서도 많은 비중을 둘 예정입니다.
Don Quixote
1집을 내고 2년의 공백이 있었는데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던 게 바로 <돈키호테>라는 곡이에요.
고마운 노래고 의미가 많은 노래지요. 나중에 백발노인이 되어도 그 노래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싱글 앨범에 굳이 돈키호테를 리믹스하여 수록한 이유는, 1집 [Heavy Bass] 때의 아카펠라 음원이 전무후무해요. 그런데 특히 동키호테를 아카펠라로 진짜 많이 찾으셨어요. 아카펠라 라는 게 비트를 싹 빼버리고 보컬 톤만 나오는 음원이기 때문에 굉장히 벌거벗은 느낌이 나죠. 사운드 환경과 퀄리티를 노골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요. 그래서 1집 때 열악했던 작업 환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녹음 시스템, 퀄리티 등 행여라도 남들 눈에 보여질까 봐 걱정을 많이 하면서 이런 퀄리티라면 아카펠라는 되려 안 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에서 제작을 안 했었는데, 나중에는 그래도 아카펠라 라도 갖고 있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죠. 주변의 팬들이나 음악 하는 사람들의 원성도 들었어요. 힙합에서는 상대 아티스트들의 곡 샘플링을 통해 많이 만들잖아요. 어쨌든 여러 의미에서 돈키호테를 리믹스도 해 보고 아카펠라도 넣어보고 다양한 형태로 수록한 겁니다.
Simo
시모는 싱글 Soulfire의 돈키호테 리믹스 버전에 피쳐링을 해 준 친구에요. 이 친구는 온라인 상 커뮤니티를 통해 굉장히 잘 한다는 입소문이 있었어요. 저도 익히 시모 얘기를 많이 들어왔고, 작업물도 들어봤기에 만나고 싶어하던 찰나에 주변 지인들 거쳐서 연결이 됐어요. 돈키호테 리믹스를 시모한테 맡겨보자 해서 일단 만났는데 놀랬어요. 모델이 하나 걸어오길래 ‘설마, 에이~’ 했죠. 근데 자기가 시모라는 거에요. 실물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잘생겼고 키도 커요. 보통 음악 잘하면 외모는 부족해야 하는데. 하하. 그런데 이 친구는 생각도 깊고, 마인드도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습니다.
Whee-Sung
(참고로 ‘돈키호테’ 원곡 피쳐링은 휘성이 맡았었다) 노래는 휘성이 잘하죠. 노래로만 보면 휘성은 국내에서도 훌륭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니까요. 그런데 시모는 자기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프리랜싱을 잘 하니까 그 성격이 다르죠. 시모도 나름대로의 느낌으로 확실히 존재감을 줬다고 생각해요. 독특한 스타일로 피쳐링을 해냈기 때문에 어느쪽이 더 낫냐를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네요.
No. 1 Rhyme Maker
(인터넷에서 라임 일인자로 피타입이 언급되는 사실에 대해) 좋죠. 하하. 헛고생은 안 했구나 싶죠. 저는 랩에 대해 나름대로 완고하고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제가 쓴 칼럼이라든가 인터뷰를 읽으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저는 제가 가진 음악적 이론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해낸다면 그 다양성을 존중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기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뭐 해선 안될 것 했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각자의 이론을 가지고 대결하고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제 라임에 대해서 좋게 평가해주시면 저는 뭐 감사하죠.
Communication
매일 보는 사람들끼리만 보게 되고, 얘기하는 사람끼리만 얘기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얘기를 안 하는 거죠. 술자리에서는 얘기해요. 자기 이미지 때문에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술이 없으면 얘기를 안 한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항상 똑 같은 커뮤니티만 형성 되는 거고. 새로운 외부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리는 거죠. 아이디어 파이트(Idea Fight)라고 하잖아요. 힙합 아티스트들끼리 뭔가 세미나처럼 진행되는 아이디어 파이트의 장을 마련하려고 많이 노력했었어요. 그런데 ‘뭐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이러고 잘 안됐죠. 실현이 가능할 진 모르지만 그런 논쟁의 장이 활발하게 왔다갔다하고 부딪힐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Diss(Disrespect)
(Diss란 힙합 내에서 비슷한 음악적 지향점을 지닌 그룹과 그룹끼리 서로의 진정성을 가지고 논하거나, 다소 거칠게 비난하는 행위를 말함) 한국 힙합 씬이 워낙 좁고 한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니까 디스가 미국처럼 잔인하게 일어나진 않죠. 힙합의 역동성이나 생명력, 에너지는 배틀 마인드에서 나오는 건데, 정에 약하고 땅덩어리도 좁은 이 나라에선 그게 활발하게 진행될 수 없죠. 사실 디스라는 건 독하게 비꼬아주고 씹어주고 터질 것 같은 에너지잖아요. 대립과 반목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미국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중요한건 그 쪽의 배틀 마인드는 단순히 지역으로만 국한되어 연대 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에 대한 증명이라는 거죠. 8 마일(에미넴 주연의 영화)이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비보이에서는 쇼다운이라는 것을 하고, 랩 하는 사람들은 랩 배틀을 할 테고 철저하게 기술 경쟁의 향연이거든요. 그런 게 있어야 각자의 기술이 더 연마되고 발전 될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게 없는 거죠. 미국에서는 이런 게 되어왔기 때문에 못하는 애들은 철저하게 욕을 먹고 사라져갔고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생존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거고.
Rap
아무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들어보면 랩이라는 건 멜로디가 없는 노래잖아요. 이게 노래일 수도 있는 것은 멜로디와는 다른, 리듬이라는 영역에서 쾌감을 주는 거기 때문이죠. 타악기화 된 보컬이죠. 리듬이라는 것은 단위가 있잖아요. 이 비트를 동일한, 비슷한, 유사한 발음을 가진 언어들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보면 되요. 추상적이지만, 박자라는 게 성립이 되려면 일정한 패턴의 소리들이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그것을 박자라고 부르고 리듬이라 부르죠. 이 리듬을 언어로 만드는 게 랩입니다. 메시지를 다 떠나서 흑인 음악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과 스킬이거든요. 흑인음악은 이 기술의 향연이기 때문에 옛날 재즈나 소울, 훵크 다 테크닉에 목숨을 걸었지요. 이 테크닉을 통해 절정에 도달한다고 해야할까. 굉장히 쾌락적인 거죠. 오로지 테크닉에 대한 탐닉, 그게 흑인음악의 정서고, 그렇다보니 배틀 마인드가 더 강할 수 있던 거겠죠. 기술 대 기술로 부딪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마인드를 놓고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고민 할 시간이 있으면 기술을 먼저 닦으라고. 사실 철학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정신 운운하는 건 소용이 없다고 봐요. 그게 어쩌면 동양적인 사고 방식에서 나온 걸 수도 있겠지만요, 힙합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필요 없어요. 힙합은 오로지 스킬, 그게 중요한 겁니다.
처음으로 랩 음악에 메시지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람은 그랜마스터 플래쉬(Grand Master Flash)였어요. 그가 [The Message]라는 곡을 발표하면서부터 그 전까지는 여흥에 불과했던 랩이 처음으로 메시지를 생각하게 된 거죠. 저는 메시지를 담는 것 자체도 기술이라고 봐요. 이것을 독립적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라임을 하면서도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 자체가 엄청난 스킬 이거든요. 메시지는 기술의 하위 범주로 들어간다고 봐요. 테크닉은 극복의 연속입니다. 뛰어넘고, 뛰어넘어 한계를 갱신하는 것이 진정한 기술이죠. 힙합은 특히 이런 요소가 많아요. 제약을 스스로 걸어놓고 그것을 기술로써 스스로 극복해 내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그냥 얘기를 해도 메시지는 전달되잖아요. 그런데 이걸 굳이 라이밍(Rhyming)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면 쓰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도 기술의 일환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Writing
(그는 힙합 전문 웹진 ‘리드머’와 무가지 ‘블링’에 글을 기고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존의 평론이나 매체들이 저를 만족시켰다면 제가 펜을 안 들었죠. 일종의 반칙이죠. 아티스트대 아티스트로서는 그렇죠. 음악도 하고, 자기 음악도 변호하는 글도 쓰면 그건 반칙이잖아요. 근데 뭐랄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힙합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되는 게 아닌가. 단순히 내가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 해서 사랑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 방법론적인 얘기도 했었고… 누군가는 까발려야 해요. 좀 욕을 먹더라고 모험수를 갖고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제 글이 평론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단순한 칼럼, 에세이 정도가 좋겠죠. 리드머의 경우는 연재를 짧고 굵게 끝냈어요. 이후에 블링 같은 잡지에는 캐쥬얼하고 편한 얘기를 주로 했죠. 방법론을 전하는 건 그만하면 됐고, 이젠 좀더 의식을 깨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요. 개인적으로는 에듀테인먼트 같이 캠페인을 많이 하려고 해요. 힙합을 보급 할 수 있는 캠페인들이 필요하거든요. 힙합의 매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굉장히 교육적인 캠페인들…
Philosophy & Football
(혹시 철학과가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철학과 맞습니다. 저는 낙제생이에요. 좀 부끄럽긴 철학과에서 제가 제일 말 못했어요. 대학 때는 미식축구 하느라 바빴어요. 성균관 대 아마츄어 풋볼팀을 나왔어요. 한 50개 팀이 있어요.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있죠. 하하. 선배들이 잘한다고 부추겨서 계속 했었는데 몸은 몸대로 아프지, 규율은 빡세지, 직업으로 삼을만한 운동은 아니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에서 미식축구는 거의 할레루야 축구팀 같은 분위기에요. 하하. 실업 팀 같이 평일에는 사무실 있다가 주말에 뛰는 거죠.
Books
요즘엔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보고 있는데, 그래도 항상 책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일단 언어라는 것을 많이 접하고 많이 쓰면 쓸수록 그게 연습이 돼요. 말도 많이 해야 느는 것처럼 책도 그런 것 같아요. 문장 한 줄 보면서 감탄하고, 이 표현은 어떻게 나왔을까 하고 의심해보고, 추리해보고, 이런 행동들이 문장력을 키울 수 밖에 없겠죠. 소설을 볼 때 플롯이나 구조를 본다든가 다른 구성 방식들을 보면서 문학적인 기술을 음악으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추천하고 싶은 책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쓴 직업으로써의 정치, 직업으로써의 학문입니다. 대학교 수업 때 교재로 받아본 책인데,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중요한 얘기를 다루고 있어요. 일단 막스 베버 하면 사회학의 아버지라 할 만큼 사회학에 대한 분석이 뛰어나죠. 이 책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어떤 조건과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프로페셔널리즘과 소명의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고, 그것이 제 인생을 바꿨다고 할 수도 있어요.
Teaching
(그는 트랜스팩토리라는 문화공간에서 랩을 가르쳤다) 랩을 가르치면서 요즘 어린 친구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정말 선풍적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심 뿌듯했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했어요. 이게 언제까지 갈 건가. 그래서 친구들이 얕고 편하게 받아들이기 쉬울까 봐 일부러 더 깊게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 잘해서 혼자 먹고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내가 증명한 내 방법론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것이 좋죠. 나 혼자 잘해서 군림하고, 나 죽으면 진짜 힙합은 사라지는 건가 이런 생각은 도움될 게 하나도 없어요. 수업을 하면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노하우를 공개했으니, 수강생들에게는 아마도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되었겠죠. 굉장히 열의를 갖고 참여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한 명을 골라서 적은 금액이지만 장학금을 수여했는데, 그 한명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열의를 갖고 참여해 주어서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죠.
Parents
(피타입의 아버지는 유명한 드러머 강윤기 씨이고, 어머니는 패션 관련 종사자다. 이러한 집안 환경이 음악 하는 데 도움이 되냐고 물어봤다) 그럼요. 정확히 말씀 드리자면 어머니는 의상실과 경영하셨고 미용업도 좀 하셨죠. 뮤지션의 아버지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혜택이에요.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냥 습관 같은 거였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아버지는 제게 드럼을 안 가르쳐 주셨어요. 정확히 말해서 음악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으셨어요. 언젠가 제가 “서울예전 보내주십시오. 작곡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랬을 때 너는 안 된다고, 너는 대학가야 한다고 말리셨어요. 저만큼은 안정적으로 살길 바라셨죠. 그래서 나중에 몰래 음악 했어요. 학교 합숙 훈련 갔다 온다고 거짓말하고선 부산가서 음악 작업하고, 그 때 킵루츠(Keeproots, 힙합 1세대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형을 만나게 된거죠.
Ra Kim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 <라킴(Ra Kim)>을 꼽는 이유가 있어요. 미국 내에서 라킴이 받는 평가 자체가 ‘단순한 말장난을 라이밍 예술로 발전시킨 아티스트’로 일치해요. 무엇보다 계산된 음율을 정확히 계산된 구조로 랩을 하는 아티스트이고, 랩에 눈뜨게 해 준 아티스트입니다. 라킴 외에 KR-ONE도 철학적인 메시지나 퍼포먼스 때문에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를 꼽자면 <밥 말리(Bob Marley)>인데 밥 말리가 갖고 있는 가사의 공격성과 표현방식이 절 매료시켰죠.
Future
제 생각에 저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느 자리를 가거나 어느 공식 석상이거나 두 번 생각 안 해요. 저는 제가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여과 없이, 계산 없이, 오픈 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흔히들 물어봐요. 음악을 언제까지 할거냐. 거기에 대해서 걱정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힙합이라는 건 제게 있어 살아있어서 숨쉬는 거라고 생각 해 왔거든요. 다만, 기술에 대한 탐구를 계속 해야 할 것이고 탐구한 바를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 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인간 중심의 음악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인간에 의해서, 인간을 위하는 음악을 해야 겠죠.
미개척 분야에 있던 한국말 랩을 국어학적으로 개척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죠. 앞서 말한 그런 캠페인이나 제 움직임들이 좋은 결과를 내서 '저 사람은 정말 투철하고 치열하게, 제대로 살다간 뮤지션이다.' 라고 평가 받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및 정리
안현선(jjorang2@gmail.com)
1) 처음엔 피타입의 덩치와 인상만 보고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피타입은 매우 성실히 인터뷰에 답해주었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소탈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뮤지션입니다. 다시 한번 피타입에게 감사합니다.
2) 인터뷰에 많은 배려를 해 주신 파운데이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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