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 금요일

음악 읽어주는 남자, 김작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말하고, 공감한 소행일지

개인적인 사담과 곁들여 인트로를 시작한다면, 내게 있어 글은 괴물이다.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하고 있는 웹진은 늘 마감에 쫓겨 헉헉대는 형상이라니. 어느 늦은 밤 고즈넉하게 커피도 타 놓고, 담요도 덮고, 나름대로 마감 잡기 태세에 들어가 노트북을 켜면 한참이고 워드의 흰 종이만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흐른다. 잠이 오고 꿈을 꾼다. 대략 천만 포인트의 궁서체 귀신이 백지장에 튀어나와 집이고 마을이고 죄다 쑥대밭으로 만든다.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고 깨어나니 시계바늘은 조선의 아침을 맞이하며, 변하지 않는 것은 심장소리보다 더 쿵쾅대는 마감타이머다.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어보면 이런 말이 있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참 어려운 현실이다. 나와라 뚝딱하면 뭐든지 알아서 나와주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시 한 번, 내게 있어 글은 괴물이다.
어느 날인가 지하철에서 영화주간지인 을 읽으며 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영화 잡지를 읽으면서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니까 메인 기사는 제쳐두고 광고, 독자란 등의 사이드 기사를 먼저 훑는다. 잡지를 넘기는 손가락에 책갈피가 있는지 펴자마자 좋아하는 ‘음악’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일본 밴드 폴라리스의 앨범 리뷰가 있어 쭉 읽어 내려간다. 온 몸이 쭈뼛하게 선다. 모 핸드폰 광고처럼, 누군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면 아마 폴라리스의 음악이 들렸을 테니까. 폴라리스는 그렇다 치고, 이 글을 쓴 ‘김작가’가 누군지에 온통 신경이 몰리기 시작했다. 실명이 아닌 필명은 한층 더 그를 미지 세계의 작가처럼 느껴지게 했고, ‘나도 그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동경심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한가한 오전엔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작가 인터뷰 잡았다.”라는 말과 함께 만남의 자리를 주선한 같은 웹진 권모기자. 마치 사건 현장 잡은 형사마냥 뛰어나간 홍대. 나보다 훨씬 일찍 온 권기자와 김작가는 몸에 좋은 낙지요리를 먹으며 단란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본인은 푹 익혀진 낙지 가슴 놀랄만하게 숨을 헐떡대며 나타났으니 참으로 아방가르드한 김작가와의 첫만남이었다.
음악 읽어주는 남자, 김작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말하고, 공감한 소행일지
Preview_홍대 근처 B – h i n d
아이스 라떼와 녹차 카푸치노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비우고도 수다는 상당시간 이어짐
Interviewee file_김작가
들으면 모두가 알만한 잡지들에서 맛깔 나는 글쓰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후려친 죄가 상당함. 영국에 요리 잘하는 제이미 올리버가 있다면, 우리에겐 글을 잘 뜨는 사시미의 달인 김작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FILM 2.0, 프라우드, GQ, 앙앙, 오마이뉴스 등에 글을 싣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기도 하다.
블루바톤(이하 B)_쑥스러우시겠지만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그냥 뭐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고 글 쓰고 방송도 하고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도 하고. 그 정도 입니다.
B) 현재 어디 어디에 글을 쓰고 계신지요.
지금 고정적으로 하고 있는 매체는 필름 2.0 인데, <야담과 실화>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요. 음악 잡지 ‘프라우드’ 에도 매달 연재하고요. 그 외에 중앙일보라든지, 패션지 등 여러 곳에서 글을 씁니다.
B)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는 ‘프라우드’ 의 <악행일지> 외에도 앨범 리뷰를 쓰시던데 주로 어떤 장르를 쓰시는지?
주로 모던 락, 일렉트로니카 쓰고, 월드 뮤직도 가끔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면 쓰는 편인데, 그래도 락이 가장 저에게 맞지 않나 싶어요. 거기서도 케케묵은 락 말고 90년대 이후에 나온 음악들이 좋아요. 물론 6-70년대, 80년대의 음악도 좋지만 90년대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할 수 있겠죠. 80년대가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보수적이었던 시기였고,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가 팽팽했기에 그 억눌렸던 욕망들이 90년대에 뿜어져 나오면서 굉장히 절실한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었지 않나 싶은데요. 음악이든 영화든 인디펜던트의 황금기였던 그 때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제 자신을 ‘90년대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또한 90년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긴 머리를 흩날리며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모두 웃음)
B) 본격적으로 음악과 관련하여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어떠했나요?
원고료를 처음 받았던 건 2001년 4월인가… 당시 <문화사기단>이라는 펑크 레이블에 조윤석씨라고 홍대 앞에서 이것저것 많이 하신 분이 계셨는데, 당시 <펑크 영화제>를 기획하시면서 한국 펑크 록의 역사를 정리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셨었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조윤석씨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 분 때문에 이 곳 홍대에 더 뿌리를 박았다고 보면 되고요. 어쨌든 그 당시에만 해도 평론가를 하겠다거나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어요.
B) 안 그래도 FILM 2.0에 연재되는 <야담과 실화>를 읽어보면 간간히 펑크음악에 대한 애정을 담아내시기도 하는데, 그런 배경도 있었군요. 펑크 음악에 남달리 애착을 갖고 계신 이유가 있다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펑크는 솔직하죠. 예전에 한참 펑크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가 지금 들어와서 유행 지나 한 물 가고, 펑크가 죽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연할 때 보면 펑크는 그 어떤 음악보다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다 거짓말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또한 실제 사람과 음악이 일치하는 음악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군대 제대하고 펑크를 알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고, 그 때 그 느낌을 저도, 꾸준히 음악 하는 펑크하는 친구들도 똑같이 갖고 있다고 할까요. 기본적으로는 펑크의 솔직함이 좋다는 거예요. (이 답변에 이어 작년 ‘카우치 사건’에 대해 물어봤으나 그는 바로 거품을 물었다. 작년에 입이 닳도록 의견을 피력했다고.)
B) 다시 <야담과 실화> 얘기를 하자면, 글의 소스가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뮤지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맛이 쏠쏠하다고나 할까요. 연재 기사를 쓰기 위해 어떤 식으로 글의 꼭지를 찾으시는지? 그 외에도 자신만의 음악 관련 정보를 얻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평소에 돌아다니다가 재미있겠다 싶으면 머릿속에 생각해놓다 풀어놓기도 하고, 주로 웹서핑을 통해 많은 팩트(fact)를 얻어요. 해외 음악 같은 경우, 정보수집을 하는데 있어 사적인 정보 위주로 모으고 나머지는 제 시각을 많이 담아 철저히 주관적으로 나가죠. 간혹 영미 인디씬의 동향까지 파악하려 애쓰시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에요. 좋다 싶으면 들어보고 그러지, 지식을 많이 쌓으려 노력하진 않아요.
B) 얘기를 듣고 보니 음악에 관련된 글을 쓴다고 그게 강박관념이 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약 2년 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느낀 게 참 많았어요. 왜 영화는 잘되고 음악은 망할 수 밖에 없는 건가. 예를 들자면, 95년 당시에 와 <씨네 21>이 동시에 창간이 되었었죠. 다들 키노가 성공하고 씨네21이 폐간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씨네21의 압승이었죠. 이유는 씨네21이 한국 영화 사람들과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에요. 영화 잡지의 기자는 영화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취재를 잘하고 인터뷰를 잘하고 영화 산업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지에 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기자의 역할인 것 같아요. 영화 이야기는 평론가들이 할 수 있잖아요. 실질적으로 외국 잡지만 봐도 인터뷰에서 시작해서 인터뷰로 끝나거든요. 그런 것처럼, 음악 잡지도 국내 음악에 집중해서 단순히 질문 답변, 질문 답변 식의 취재가 아니라 똑같이 인터뷰를 하더라도 영화 잡지처럼 글쓰기의 방식을 재미있게 엮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음악 기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음악 지식은 있어야 하겠지만, 어떤 얘기를 끌어내서 어떤 식으로 가공할 수 있느냐. 글을 풀어낼 것이냐죠. 저의 경우만 보더라도, 뮤지션 인터뷰 할 때 음악 얘기 거의 안 물어봐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나, 그 사람이 어떤지에 대해서만 말해도 음악은 자연스럽게 보여진다고 생각해요.
B) 흐흐. 그렇다면 사적인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음악 외에 파고드는 관심분야가 물론 있으시겠죠?
2005년 한 해 동안 열심히 한 문화생활이 뭐였나 생각해보니, 하루에 네 권에서 여섯 권까지 빠짐없이 본 ‘만화’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동네 단골 만화방에 제가 가면 조금 더 많이 적립해줘요. (웃음) 옛날부터 만화방 알바를 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B) 만화 좋아하신다니, 만화 그리는 실력도 궁금해 지는군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음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악기 하나 못 다루고, 만화 정말 못 그립니다.
만화 외에도 사람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특히 마라톤을 즐겨 해요. 제가 사는 곳이 한강고수부지와 가깝기도 한데, 그 곳에서 하루에 6킬로 내지 10킬로까지는 달려요. 음…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B) 음… 요리라. 결혼 생각 없으신가요?
의도적인 건 아닌데, 여태껏 사귀었던 친구들 중 70년대 생이 하나도 없었어요. 81부터 더 낮기도 했고… 나이 들은 친구들이 절 안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제가 철이 안 들어서 인가? (그리고 그는 한 잔을 비우고 짙은 향의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B) ‘90년대 아이’라 자칭하는 김작가님께서 손꼽는 밴드 리스트가 슬슬 궁금해지네요.
아직도 오아시스(Oasis)의 후유증이 남아있어요. 아, 정말 울컥하던데요. 라이브 앨범 다시 들으면서 그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 외엔 일본의 ‘플리퍼스 기타(Flipper’s Guitar)’라는 밴드도 좋아하고요.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도 좋아하고. 근래에는 뉴 오더(New Order) 같이 댄스와 락을 결합한 80년대 맨체스터 밴드들이 좋더라고요. 최근에는 브라질, 라틴 같은 월드 뮤직 쪽에도 눈길이 가요.
B) <악행일지>를 읽었을 때 일본 밴드인 피시만스(Fishmans)에 대한 감흥이랄까. 어떤 추억이 남다르신 것 같던데요. 피쉬만스를 언급하지 않으시네요.
피쉬만스는 인생의 최고는 아니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긴 앨범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나를 음악의 세계에 끌어들인 앨범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방향을 전환케 하는 내 인생의 베스트 쓰리 같은 것이 있을텐데, 피쉬만스가 그 중 마지막 텀인 것 같아요. 좋아서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B) 코넬리우스(Cornelius, 일본 시부야케의 대표적 밴드)는 어떤가요?
코넬리우스는 별로 안좋아해요. 플리퍼스 기타만큼 별로 아름다운 멜로디도 없고. 뛰어나다는 건 알겠지만요. ‘나한테 말을 걸진 않는다.’ 라는 느낌? 말을 거는 음악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게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될 수도 있고, 동방신기도 좋을 수 있고.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있어 동방신기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요.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일 뿐이지, 거기에 우열이 있진 않아요.
B) 이제부터가 본론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질문입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점이기도 할 겁니다. 어떻게 해서 ‘김작가’라는 필명을 쓰시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서… 그냥 파일을 하나 만들어서 갖고 다녀야겠어요. (웃음)
…… 97년 12월에 제대를 했어요. 복학하기 전 시간이 있으니까 어학연수를 갈려고 했는데 때마침 제대하고 IMF가 터졌어요. 유학 얘기는 완전 물 건너 갔죠. 당시 탄현에 살았는데 그 곳에 SBS 방송 아카데미가 있었어요. 이왕지사 어머니가 한 번 다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시기에 막연하게나마 평론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방송작가 과정에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실습이라는 것을 했는데, 96년 말쯤에 휴가 나오면서 크라잉 넛, 노브레인 공연하는 거 보면서 깜짝 놀란 기억도 있고, 마침 제대하고 나와보니 한창 드럭(90년대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이 뜨고 있기도 해서 드럭을 찍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노브레인의 불머리를 찍기 위해 애써 친한 척을 하다 실제로 친해지게 되었어요. 처음엔 얘가 도대체 뭐하려는 건지 궁금했었대요. 근데 소개를 하면서 이 친구는 방송하는 작가인데 누구다 이렇게 소개하면서 김작가로 불렸죠. 펑크 쪽에서는 별명 하나 생기면 계속 그거로 가거든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찍고, 드럭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느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도 계속 김작가로 불렸어요. 그때부터 김작가로 소개를 했죠. 그게 편하니까.
이후 복학을 해서 인디 밴드 공연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또 학생회를 했기 때문에 직접 기획도 하고, 정문 앞에서 홍보 열심히 하면서 학교에서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많이 치뤘어요. 그러다 보니 취직할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4학년 때도 맨날 클럽 가서 술 마시고 사람들 만나고… 그 때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더 많았어요. 이후 막상 졸업을 했는데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공연 기획을 하면 어떨까 생각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인터넷 방송국이 여럿 생기면서 아는 사람 소개로 PD로 들어갔어요. 하는 일 없이 6개월 동안 애들 술 사주고 그러다 회사 망하고 또 놀다가 <문화사기단>이라는 레이블에 있게 되었어요. 그때가 아마 노브레인의 청년폭주 맹진가가 나올 때였어요. 애들이랑 같이 공연도 다니고, <안티 서태지 페스티벌>도 하고,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억울한 청년들이 떼거지로 몰려 싱어롱(Sing along) 하고 슬램하고 그렇게 1년을 살았어요. 그 이후로는 회사를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매너리즘도 있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 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조윤석씨가 음악잡지를 낸다 하셔서 들어갔는데, 그게 'MDM' 이였어요. 거기도 얼마 가지 못하고 그 해 가을에 폐간되고… 그러던 2002년 가을 말 즈음에 에서 연락이 와 음악 기사를 쓰게 되었죠. 그게 <음악작명소>라는 코너였어요. 맨 처음에는 아이템이 없어서 한 달이면 소재가 떨어지겠다 싶었는데 1년까지 쓰게 되었고 지금의 <야담과 실화>로 이어진 거거든요. 아무튼 그 이후에 그 쪽에서 기자로 올 생각 없냐 해서 FILM 2.0 기자로 약 2년간 일하게 되었죠.
B) 2년이라… 그런데 기자 생활을 마감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거기서 기자로 글을 쓸 때는 실명을 썼고, 음악 페이지만 필명인 ‘김작가’를 썼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내가 갈 길은 음악인 것 같은데… 하고 말이죠. 제가 전형적인 O형이기 때문에 앞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하고 그냥 나가거든요. (웃음)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는 거죠. FILM 2.0 다니면서 내가 갈 길은 글 쓰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처음으로 잘 해보고 싶고, 뭔가 치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특히 김영진 편집위원이라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 그 곳에 계신데, 그 분의 글을 보면서 처음으로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을 느꼈죠.
B) 아주 고리타분하고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듣고 싶은 답변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음악은 음악이죠. (웃음) 그러니까 음악은 뭐다라는 것보다 좋은 음악은 뭐냐 인 것 같은데, 좋은 음악이란 한 인생을 바꾸는 음악인 것 같아요. 60년대에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대였고, 70년대 펑크가 등장할 때는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이 되고 싶어서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일어난 것과, 90년대엔 ‘우리는 살아있다 우리는 바보지만 바보는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느낌. 창작자들의 진심과 청자와 시대가 만나 큰 방향을 일으키는 것. 예컨대, 맨날 조지 마이클만 듣던 사람이 락큰롤을 듣고 달라지는 것처럼 한 사람의 생각 또는 시대를 바꾸는 것이 좋은 음악 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음악의 기본은 멜로디와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요즘 음반시장이 불황인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좋은 멜로디가 없어서예요. 창작자의 문제도 있다는 거죠. 좋은 멜로디가 없고, 좋은 가사는 더욱더 없고. 오락 프로그램에나 나와서 장난이나 치고. 가사가 없으면 왜 보컬이 있겠어요? 뭔가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뭔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B) 요즘 음악과 관련된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저도 글을 쓰는 입장으로써 항상 고민하는 부분인데,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독자가 제 글에서 소개되는 음악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난 후 음악을 들어보고 싶어한다면 그 글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제 글은 주관적인 편인데 그걸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쓰는 방법은 그대로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는 거죠. 핸드폰 매뉴얼과 다를 게 뭐 있나요. 저는 글 자체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글은 읽고 싶지도 않고, 쓰고 싶지도 않아요.
B) 그렇다면 김작가님은 글을 쓰실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염두하고 글 작업을 하시나요?
저 같은 경우는 단어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빠르다고 하는 것을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듯이, 음악의 막연한 느낌들과 비슷한 느낌의 단어다 라고 하는 것들을 생각해서 쓸려고 합니다. 비록 짧은 리뷰라 할 지라도,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B) 제가 이뤄내고 싶어하는 글쓰기의 방법론과 많이 닿아있다는 느낌입니다. 무언가 연상 되어지는 그림이 떠 오르는 것 말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글쓰기에요. 어떤 무언가 연상되는 그림이 떠 오르는 거. 라운지나 일렉트로니카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 음악이 어떤 생활 패턴과 어떤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연관되는지 찾아나가면 글이 술술 풀리죠. 부다빠(Buddha Bar)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바디 샵(Body Shop)같은 코스메틱을 좋아하고, 호텔 코스테(Hotel Coste)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고급스런 칵테일 바를 연상시킬 수 있겠고요. 전 오히려 힙합 음악이 어려워요. 그런 음악들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이고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함수와 방정식으로 만들어진 음악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비트도 그렇고 어쨌든 프로그래밍이잖아요. 그런 건 좀 어렵고 딱딱해요. 단어들만 해도 계산기, 함수… 이런 것들이 나올려나? (웃음)
B) 매우 사적인 질문입니다만, 어릴 때 수학 잘 하셨나요?
저의 오른쪽 뇌와 왼쪽 뇌의 용량 차이는 엄청납니다. (크게 웃음)
B)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군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중국에 진출해서 뭘 점령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웃음)
개인적으로 꿈이 있다면, 음악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들만 모아놓은 것. 굳이 예를 들자면 미국의 <빌리지보이스>를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벼룩시장에 약간의 씨네21 정도랄까? 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들. 작업실 구한다, 룸메이트 구한다 등의 정보 있잖아요. 또 남녀관계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건드릴 수 있는 섹스 칼럼도 넣고 싶어요. 리뷰는 하나도 안 넣을려고요. (웃음) 오직 사람 얘기만 할 수 있는 그런 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B) 이제 정말 마지막입니다.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먹고 살고 싶으면 빨리 다른일을… 악의 구렁텅이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크게 웃음)
B) 그래도 희망을 좀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털 싸이트 같은 곳에 리플 달릴 글은 쓰지 말아라.
B) 명쾌한 답변이네요. 기나긴 인터뷰 하느라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작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약간의 수다를 나눈 뒤, 카페[B – h i n d]의 문을 나왔다. 카푸치노의 부드럽고 황홀한 거품을 홀짝 홀짝 먹다 보면 대개 에스프레소의 잔재만 남아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지만, 거품보다 진했던 거품 밑 우유의 감흥은 인터뷰가 끝나고도 계속 되었다. 합정역으로 걸어가는 골목길, 첫만남이라 약간은 어색하기에 꺼낼 수 있는 이런 저런 가벼운 사담들이 오고 갔음에도 무언가 계속 이야기를 꺼내고 싶게 하는 매력을 가진 사람과의 즐거운 만남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하루. 해묵은 씨디를 꺼내어 틀고는 잠을 청하기 전, 다시 한 번 폴 오스터의 말을 되새김질 했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궁서체 귀신의 꿈을 꿀 일도 아니었다. 선택되는 것은 꼭 해야겠다는 단순한 의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커다란 덩어리로 이루어진 삶을 깨물어 이도 부러지고, 피도 나고, 병원도 가 보는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신기하게도 김작가를 만난 뒤, 액땜한 듯 더 이상의 귀신은 보이지 않았고, 진기명기한 그의 필력이 펼쳐낼 어드벤쳐만 남아있었다.
인터뷰 및 글_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Thanks to
나쵸 부스러지듯 아삭아삭하고 맛있는 입담을 보여주신 김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인터뷰 자리 마련해주신 미모의 권기숙 기자님께도 거듭 감사!!!
치토스 봉지 속 딱지보다 더 궁금한 김작가의 뽀나스!!!
B) 과대평가 되는 뮤지션?
루씨드 폴. 이미 그들의 정체성은 인디가 아닌, 고급가요다.
김동률. 청년이 되어서도 소년의 음악을 하려 하니 잘 안된다.
B) 과소평가 되는 뮤지션은?
피들밤비.
대단한 앨범이라 생각하는데 반응이 너무 없지 않나 싶다. 라이브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앨범만큼은 올해의 신인이다. 귀 밝은 사람이라면 벌써 찍어놨을 것이다. 음악계에 분명 새로운 지평을 연 앨범이다.
허클베리 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델리나 언니네만큼 된다고 생각하는데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가 뒷받침 못 되는 케이스.
B) 내 인생의 베스트 3?
노브레인의 [청춘 98]
말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디 앨범이다.
The Beatles [Rubber Soul]
가장 따뜻한 앨범이 아닌가 싶다. 계속해서 샘솟는 음악적 영감들이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을 준다. 겨울이 되면 꼭 한 번쯤 꺼내어 듣고 싶은 앨범.
The Beach Boys [Pet Sounds]
비치보이스를 너무 좋아한다. 비치 보이스의 초기작도 신나고, 정말 안 질리고 모든 게 완벽하다. 세상에,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멜로디가 있을까. 펜타토닉이 없이도, 클래식을 통해서 어떻게 이런 완벽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는지. 브라이언 윌슨 그에게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완벽한 파트너가 있었다면 그들이 아마 비틀즈를 능가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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