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힙합 공연에 가면 관객석의 남자들이 한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무대 위 남자 MC를 향해 Respect를 표시하고,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이유 없이 소외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힙합 클럽에 잘 안 가게 돼."
Music is the Universe
견제하지 않는 마음
대학로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나와 그녀들 셋이 최근에 나눈 이야기들이다. 여행하는 작은 스토리숍을 운영하는 나의 친구는 이런저런 문화적인 열망을 사람들과 함께하길 좋아하며, 이번에는 '소녀들의 슬램파티'라는 컨셉으로 판을 짜는 중이다. 단순히 '너의 글이 개인적으로 좋아서'라는 추천으로 참가자가 된 나는 슬램이 도대체 무엇인가 알아보고자 마크 레빈의 98년도작인 영화 'Slam(슬램)'을 감상하였다. 소위 '니그로(검둥이)'라 자신을 밑바닥으로 낮추는 뉴욕 빈민가 흑인들의 삶 속에서 분노하는 빈곤과 상실되는 자아는 영화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시처럼 읊어지고, 그는 일정한 규칙 또는 힙합 뮤직에서 중시되는 라임과 플로우를 무시한 채, 그만의 리듬으로 언어를 동여매고 있었다.
이처럼, 슬램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퍼포머의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중요시하게 여겼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슬램을 통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의 세계에 한층 더 깊게 빨려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는 이에 받들어,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비춰진 기존의 힙합 문화가 실질적으로는 폐쇄적이라는 것에 입을 모았고, 소녀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힙합 공연과 슬램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만의 형제애를 과시하잖아.'
그들과 한참 이야기하다, 문득 장르의 특수성이라는 주제로 혼자만의 회담에 빠져들고 말았다. 음악 장르가 다르면 느낌이 다르고, 그것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음악과 가장 걸맞는 분위기의 문화들을 만들어내고 또는 음악이 그 문화를 따라가기도 한다. 어찌보면 6-70년대 그루피들을 양산해냈던 비틀즈가 그 당시의 보수층들에게 있어선 난감했을 것이고, 아름다운 풀들을 엮어 피워내는 환각과 사랑을 때로는 방종과 헷갈리기도 하였던 자유를 누린 포크 록의 히피세대는 베이비붐의 주역들에겐 치욕이었을 것이다. 마초적인 이미지의 헤비메탈 보이에게 근접할 수 없었던 긱(geek)들이 나중에 커서 포스트 펑크의 주역이 된다든지, 드라마 퀸의 소녀들에 반하는 록큰롤 걸들 등 음악은 세대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자아욕구를 실현시켜 주기도 한다. 힙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들어봤는데 고개가 까닥여지고, 리듬이 좋아 움직여보니 속된 말로 간지도 좀 나더라 하는 첫 만남에서, 더 좋아지다 보니 힙합을 하는 그네들의 습관부터 게토(ghetto)정신에 이름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한 발짝 더 앞선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음악이든, 영화든 순수한 팬을 넘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고 위험한 척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중문화란 혼자의 힘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데도, 매니악이 되어버리면 자신 이외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새로움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너무 많이 알아' 슬픈 현실이 종종 발생한다. 서두에서 언급된 힙합 브라더의 경우만 보더라도, 외향적으로 비춰지는 스타일이나 그들만이 감정할 수 있는 바디 랭귀지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힙합에선 정해진 룰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적용되고 있는 룰을 새로운 관객은 맛보고 있다. 음악이 먼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학교처럼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의 문화적 충격이 앞서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지 몇몇 배타적인 음악팬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클럽과 모이는 사람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최신 경향처럼 다뤄온 미디어의 문제도 크다. 모 케이블 티비가 항상 펼치는 바이브 파티만 보더라도 드레스 코드와 외모, 섹슈얼리티가 마치 힙합 클럽의 일환인냥 조명한다. 그래서 클럽은 항상 불편하다. 무언가 다 갖추고 놀아야하며, 외적 자신감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기도, 나를 사랑받기도 힘들어한다.
아마도 슬램파티의 그녀들은 이런 자리를 원했던 것 같다. 모두가 환영받는 분위기, 성, 나이 차별 없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다 같이 두 손 두 팔 벌려 하나가 될 수 있는 소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힙합을 예로 들어왔지만 모든 장르 마찬가지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
공연 문화를 지키는 것,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함부로 얕보지 않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공통 언어인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2005. 09. 10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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