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Culture Magazine
[THE BLING]
▷인터뷰: ‘BLING' 전우치 편집장
▷취재: 안현선 기자
한때 서로가 죽고 못 살았던 ‘제니퍼 로페즈’,‘벤 에플렉’ 커플을 가리켜 'Bennifer' 라는 단어를 기억 한다면, 지금에 와서 트렌드라 말하기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조차 이미 유명 명사(noun)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bling bling'이라는 단어 또한 ‘Bennifer’와 함께 회자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가십이 만들어 낸 단어도 대중 문화의 첨병이라면 그렇다 하겠지만, 음악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문화 앞에서 그것은 상당히 초라해 보이는 심사였다. 아직도 ‘블링블링’거리는 겉모습만 보기엔 껄렁한 젊은이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한 'bling bling'이 갖는 의미심장한 실천 수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노는 문화를 바꿔놓아 버린 것이다. 힙합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클럽들이 소리 소문 없이 늘어 갔고, 그저 집에서 라임을 따라하던 소년, 홀로 패션쇼를 하며 우울상을 짓던 소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블링블링은 단순히 반짝이는 장신구를 뽐내는 차원에서 벗어나 마치 외국 영화에서나 볼법한 클럽 씬으로 메우면서, 'bling bling'의 위력은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bling bling' 이라는 단어가 가진 영향력이 부정적 시각에서 다가오는 부분은, 힙합이 대중들에게 줄 수 있는 이미지를 편향적으로 묶어버린 것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블링블링’이 모든 힙합 문화인 것처럼 매체가 오도한 것은 단지 파티와 소비중심 지향으로 나아간다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한 때 힙합을 한다는 그네들 사이에서는 디스(diss-본래는 'disrespect(무시하다)' 라는 뜻인데, 흑인들 사이의 슬랭으로 정착된 지는 매우 오래다. 지금은 너무도 클래식해져 버린 95년도 영화 '클루리스'를 보더라도 "you diss me?" 라는 대사가 나온다.) 문화와 ‘블링블링’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오버 랩되면서 클럽씬을 얼룩지게 하기도 했다. 비단 디스 문화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문화를 공유해야할 클러버(clubber)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면서 자신들끼리 음악과 패션을 계층화시키기도 했으니, 이후 힙합 문화는 일반인들에게는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어보였다.
'bling' 과의 첫 만남에는 이런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했다. 나중에 그를 인터뷰 하면서 모든 것이 나의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언뜻 잡지의 외향이나 내용을 봐선 돈 많은 힙합퍼의 냄새가 풍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원색의 여인네를 표지로 삼은 심상치 않은 비쥬얼의 사진과 유명 패션 브랜드가 앞면을 장식한 광고들이 서두를 울렸고, 이어지는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공중파 방송을 탄 연예인들)와 원색의 여인네 못지않은 감각적인 사진들이 눈요기가 되었다. 또한 타 무가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넓고 고급스러운 종이의 질감은 소장용으로도 탁월했으니, 이 도도한 책을 모 클럽에서 발견하고 읽게 된 우연이 인터뷰로 이어질 줄이야.
아직까지 내겐 베일에 존재 같은 블링의 편집장을 아무리 그려봐도 상상력의 한계인지라 돈 많은 힙합퍼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하지만 "제가 좀 늦었죠. 죄송해요. 어디 가서 얘기할까요?"하며 예의를 갖추는 그의 등장으로 블링 인터뷰는 나의 예상을 깨고 편안한 100% 면소재 차림의 옷으로 돌아갔다.
"bling 이라는 잡지의 이름은 발행인 분이 만드신 거에요. 그 분께서 힙합을 워낙 좋아하시고 또 힙합 클럽도 운영하고계시거든요. 힙합 잡지로써의 이미지를 내려는 강력한 의지죠. 하하. 본래 'bling'을 힙합 잡지로 만들고 싶어하셨었는데, 사실 힙합 잡지로만 살아남기에는 한계가 많죠. 우선 힙합으로만 장르가 한정되니까 많은 부분을 기사로 다룰 수 없잖아요. 그래서 논의끝에 블링이 club culture magazine이 되었죠."
국내에서 클럽 문화 잡지는 'bling'이 처음 시도한 거란다. 사실 그간 우리나라에 문화 잡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독특한 사진구성으로 아직도 여러 이들의 기억에 살고 있는 '런치 박스' 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길고 컸던 '인', '오렌지 트렁크',지금까지도 롱런중인 '페이퍼', 하지만 무가지로써는 꽤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던 '카이' 'TTL'의 폐간으로 문화 잡지의 명맥은 페이퍼를 제외하고는 거의 끊긴 듯 했다. 하지만 기존의 잡지들이 일반적인 대중문화를 폭넓게 다루는 것에 비해, '블링'의 차별화는 '클럽 문화' 라는 것이다.
"클럽 문화라고 함은, 모든 클럽을 통틀어요. 음악클럽만 클럽인가요? 골프 클럽도 클럽이죠. 하하.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가장 효과적으로 광고주들에게 어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힙합, 하우스 클럽 쪽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아무래도 지금 막 시작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스폰서들을 모이게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라이브 클럽 쪽에 치중하기는 힘들고요. 지금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가진 곳에서 자생력을 만들어 가자는 거죠. 그렇게 키우고 조금씩 전체적으로 아우른 다는 것이 저희 목표죠."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에 입에서 술술 풀어 나오는 잡지계가 가져야 할 진취적인 생존법은 그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얻은 유산이다. 실제로도 그는 잡지계에 줄곧 몸담고 있었으며, '블링' 편집장의 역할 외에도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여행지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이렇게 인터뷰가 진행되고 보니 서두에서 내가 늘어놓은 '블링'에 대한 오해에 똥침을 가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가 말하는 소위 돈 없는 잡지가 살아남기 위한 마케팅 전략은, 기형적인 소비구조로 인해 갈수록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 잡지든 모든 잡지들에게 좋은 팁이다.
"저희 블링 식구들 대부분이 기자수업을 받거나 그쪽 관련 학과를 나온 분들이 아니에요. 음악을 하다 왔다거나, 그림을 그렸다든지 등 각자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죠. 다른 문화 관련 잡지들도 그런 경우가 많구요.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노는 분위기가 창작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재밌게 놀고, 얘기해도 나중에 '야다 놀았다. 돈 떨어졌다. 집에 가자.' 이런 수순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블링의 기반이 마케팅적인부분이 많이 들어간 이유는 나름대로 살아남아야 된다는 논리죠. 저희가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니까요. 하지만 그 밑에는 잡지를 계속 발행해 나갈 수 있는 자본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블링'의 이런 마케팅 전략은 실제로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전국을 통틀어 약 50군데 이상의 배포처를 지정 하였는데,대부분이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세련된 감각의 클럽이나 라운지 바 같은 곳이다. 독자의 타겟을 정하고 그들이 자주 가거나 몰리는 장소에 가장 손쉽게 책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매력 때문일까. 이제 막 창간호를 내고 제 2호를 내려는 이 어린 잡지에게 예상치 못한 많은 이들의 러브콜이 따르고 있다.
"클럽 컬쳐라고 하면 그 쪽에 관심 있는 분들은 트랜디하고 소비성향이 왕성하잖아요. 그런 분들을 타겟으로 잡는다면 더 효과가 있지 않나해서 배포처를 클럽 중심으로 한 것 같아요. 배포처는 계속 늘려간다는 게 발행인의 생각이세요. 실제로 이제 막 창간호를 내놨는데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 저희도 놀랬어요. 스폰 뿐만 아니라 문화 잡지에 목말라하시는 창작자들께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 하셨어요. 좋은 현상이에요."
그렇다면 그 참여열기를 음악적인 컨텐츠에 활용해 볼럼이 어떤지. bling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음악적인 컨텐츠가 사진이나 패션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만큼 꽉 채워진 느낌을 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보 위주의 평이한 음반 소개와 간략한 음악지식 전달에 그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잡지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뼈대는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 게 사실이다. 블링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분야는 음악을 위시한다.
"음반은 거의 리뷰가 아닌 소개글로 갔죠. 잘 보신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블링 구성원들이 전문 필진은 아니예요. 그러다보니 음악에 관련한 전문적인 글을 쓰는 손이 모자르죠. 근데 다행히도 참여의사를 밝혀주신 분들이 많아서 다음부터는 음악 관련 컨텐츠가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질 것 같아요. 또한 앞으로 블링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거에요. 저희가 이번에 했던 디제잉 관련 내용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음악을 다룰 예정인데, 다음호에서는 레이 찰스가 나옵니다. 이후엔 락이 될 수도 있고, 일렉트로니카가 될 수도 있고요. 패션 화보도 뮤지션들을 다 안고 갈려고 합니다. 그들이 멋지게 나오게끔 잘 포장해서 인터뷰를 한다거나 화보를 찍는 거죠. 그러면 광고주 분들도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게 되니까요. 밴드들은 그걸 모르거든요. 돈 많은 브랜드가 뮤지션들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제공하고 브랜드는 그들을 통해서 광고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요즘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음원 사용에 ‘블링’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거죠. 저희가 음원을 스폰 받아서 그걸 우리는 디제이들에게 나눠주고, 디제이들은 그 음원을 틀고. 틀지는 않더라도 한 번쯤은 그들이 들을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배급사는 홍보해서 좋고 우리는 생색내서 좋고. 디제이들은 돈 없는데 음원 잡아서 좋고. 그런 win-win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게 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게 ‘블링’이죠."
그래서 유독 ‘블링’에는 여느 잡지와는 달리 뮤지션들의 화려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창간 준비호에서 엿보았던 주석이 타고 있던 자전거는 그가 타고 있으니 이지라이더의 모터 싸이클처럼 보이고, 에픽 하이가 들고 있던 상당한 고가를 뽐내는 잘난 그 깁슨 기타가그들의 장난기 앞에서는 자유분방함의 자태를 풍기며, 'femme fatal' 이라고 애초에 미리 기획되어진 화보 프로젝트에는 스웨터의 그 보컬 맞아? 할 정도로 이아립이 퇴폐적으로, 뇌쇄적으로 풍선껌을 불고, 담배를 핀다. 그리고 또 어디보자. 이럴수가!. 지금 내 앞의 인터뷰이(interviewee)께서 옷을 벗으시는 노고까지 화보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저예요. 하하하. 모델이 없어서가지고. 정말 모델이 없었어요. (이 부분에 모두들 계속 웃었다.) 기자들이 많이 벗고 뛰고 그렇죠 뭐. 하하하. 전 그런 부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는 비쥬얼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회의 나누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끔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기존에 쓰지 않았던 주제를 사진으로써 보여 주려해요. 개인적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도 하는 거구요. 그래서 사진의 퀄리티는 셀프 카메라나 로모의 느낌을 지우려고 합니다. 정성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창간호에서 같이 화보를 촬영했던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자인 낸씨 랭(Nancy Lang)과의 'femme fatal' 작업은 그들이 비쥬얼에 들이는 노력과 잡지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예술적 아우라를 표출하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게 한다. 또한 Cibo Matto같은 뉴욕 인디씬의 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블링의 톡톡 튀는 구성물을 읽는 것만큼이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현재 가장 트랜디한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 잡지의 편집장으로써, 잔뼈가 굵은 오프라인의 기자로써 바라보는 기존 음악잡지에 대해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굉장히 안타까워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안타까워질 것 같습니다. 음반시장처럼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어요. 음악 컨텐츠 하나로만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힘들다고 봐요. 하지만 음악은 죽지 않잖아요. 점점 더 많은 뮤지션들이 나오고 공연을 하는데 그걸 세상에 알려줄 잡지가 있어야죠. 음악 잡지도 패션처럼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도 알고, 믹스앤매치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어떠한 신념을 갖고 이것만은 보여줘야 한다라는 절대정신을 가진 음악 전문 기자들의 노력이 필요해요. 거기엔 실천력이 뒤받침 되어줘야 하겠죠. 활발하게 움직이고 다양한 문화를 섭취해야 해요. 음악 하나에만 너무 빠져서 다른 문화와 자신을 격리시키면 안 된다는 거죠. 또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제대로 인수인계를 시켜줘야 해요. 올바른 글을 쓰는 사람이 나와야죠. 선배와 후배가 단절되면 절대로 발전 할 수 없어요. 정통 음악 평론을 할 수 있는 선배는 표현력이 풍부하고 시대의 조류에 민감한 후배들에게 그런 부분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블링이 유가지로써 나간다면?
"500원? 하하. 아직까지 그럴 계획은 전혀 없을것 같아요. 무가지로써 계속 블링을 즐기시길."
인터뷰를 마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만의 'bling bling' 오해는 여기서 접으려한다. 블링은 즐거워지고 싶어하는 Hot한 그와 그녀의 문화 생활에 이미 아이콘처럼 데스크탑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 같은 편안한 잡지였으니까. 그런 편안함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다. ‘블링’이 처음으로 클럽 컬쳐를 표방하면서 잡지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과, 블링을 발판삼아 잠재적 문화 소비자이자창작자인 그들이 뭉치려는 조짐이 서서히 보인 것과,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있어 이 잡지는 단순하게 'magazine'을 뛰어 넘어 미래의 우리 같은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더 진보적인 지금' 을 한 권의 책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게 꿈이죠. 소장된다는 것. 그걸 보고서는 다른 이들이 영감을 얻고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요. 이걸 받아 봤을때 모으고 싶고, 비슷하게 뭔가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편집장으로써는 보람이고 큰 축복이죠.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요."
이미 그의 꿈은 이뤄진 것 같다. 지금 내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블링’의 자리와 지금쯤 어디서 누군가가 잠이 오지 않아 펴들기 시작한 ‘블링’의 자리는 이미 확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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