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the Homemade Idol
빌리 아일리쉬(Billie Eilish)로 음악계가 난리다. 제2의 뷰욕(Bjork)이라는 로드(Lorde)가 나올 때도 이 정도의 열기는 아니었다. 세계의 10대들은 빌리 아일리쉬가 만들어낸 변종(?)적 세계에 팔로워 수로 답하며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룩을 전방위적로 넘나드는 과감함은 동경의 대상과 동시에 탈범주적인 아일리쉬의 음악적 정체성을 담아내는 플랫폼 안(인스타그램)의 또 다른 플랫폼이다. 열네 살 때 댄스 선생님에게 들려주고자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시범적으로 올린 [Ocean Eyes]가 예기치 않게 뜨면서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와 제휴 중인 Darkroom 레이블과의 계약 성사, 그리고 소셜 미디어와 아티스트적 신념 만으로도 세계적 스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의 스타덤을 제시한, 현재진행형의 빌리 아일리쉬의 배경에는 '가족'과 '홈스쿨'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 LA 출신의 배우 부모를 두었고, 일치감치 빌리의 부모는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힘썼다(여기서부터는 아일리쉬가 아닌 빌리로 표기). 빌리와 그의 오빠인 피니스(Finneas)는 엄마의 가르침을 통해 작곡을 배우고, 비틀즈(Beatles)의 음악이 그들의 교과서였다. 피니스가 음악 프로듀싱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한편 빌리는 춤, 승마, 노래를 배웠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무대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고. 피니스가 만든 [Ocean Eyes]를 빌리가 부르는 '남매 가내수공업(?)'은 빌리 아일리쉬의 성공적인 데뷔작인 [When We Fall Asleep, Where Do We Go?]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 데뷔작의 전곡 프로듀싱은 현재 스물 한 살밖에 안 된 피니스가 맡았고, 훗날 Z세대의 상징적 앨범으로 남을 확률이 다분해보이는 이 앨범은 빌리와 피니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LA의 집에서 나왔다. 한때 뮤지션을 꿈꿨던 직업 배우인 빌리의 어머니는 딸의 세계 투어를 함께 다니며 매니저의 역할을 하는 중이고, 손재주가 많은 아버지(목공예도 했다고!)는 운전부터 조명 감독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쯤되면 '홈스쿨'이 '홈비즈니스'를 만든 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발생한다. 에이펙스 트윈(Apex Twin)을 연상시키는 아일리쉬의 기괴한 앨범 커버나 피상과 소외에서 충돌하면서 괴물이 되어버린 사운드의 출처가 화목한 가족과 성공적인 홈스쿨이라니. 이러한 상충성을 괴짜스런 웃음으로 넘기는 아일리쉬의 인스타 포스트와 무수한 라이크(Like) 행렬에서 아티스트(특히 대중 음악)와 집안 환경의 고정관념은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대에 다다랐다. 어린 시절의 불우함은 고통으로, 고통은 예술로 승화되어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오랜 내러티브는 바래졌다. 사랑과 관심의 버팀목(=가족)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의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사는 빌리 아일리쉬의 대담함이 어쩌면 오늘만 살고 미래가 늘 불안한 세대가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When We Fall Asleep, Where Do We Go?]의 인트로는 남매의 방구석 작업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으며 21세기의 마스터피스는 고뇌의 결과물이 아닌, 놀이와 소통의 과정에서 나오는 창의성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베이스가 짙게 깔리는 'bad guy'의 업템포는 아일리쉬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다가 "Duh" 한 방에 멜로디의 전환점을 맞는다. 절(verse)과 후렴(hook)의 경계가 모호한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은 아일리쉬의 종교이기도 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코러스 부분의 가사가 두드러진다: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 / cause even God herself has enemies / and once the water starts to rise / and Heaven's out of sight / She'll want the Devil on her team"
신경안정제인 알프라졸람의 대표적 브랜드인 재낵스(Xanax)를 뜻하는 'xanny'의 후렴은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가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 울려 퍼지는 장면을 연상케하고, 우쿨렐레의 아기자기한반주를 기반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보코더로 재편되는 '8'은 다양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아일리쉬의 유명세를 확고하게 한 'bury a friend'는 'bad guy'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지만 훨씬 입체적이고 실험적이며, 아일리쉬가 흥미로워하는 '기괴함'을 가장 잘 표현한 가장 돋보이는 넘버임에 확실하다. '셜록'의 제임스 모리아티의 대사에서 따온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은 아일리쉬의 그러한 흥미가 가사로 잘 드러났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파트에서 비명 소리를 넣는 뻔함 대신 'Scream'이라고 그대로 읽는 날 것의 유머부터 이미지즘적인 가사는 영상에서도 드러난다. 'you should see me in a crown'를 테마의 기점으로 삼아 떠오르는 모든 형상이 편집된 식이다.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 혹은 수식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영어에서 아이돌의 정의는 K-POP에서 흔히 말하는 '혹독한 트레이닝을 잘 받은, 교육되어진' 아이돌 그 이상을 넘어 '우상'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물론 시스템에 길들여진 버블검 팝(Bubblegum Pop) 스타일로 정체성을 가둬진 스타들을 뜻할 때 'teen idols'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빌리 아일리쉬에게 있어 아이돌이라는 왕관을 씌운다면 아마 그것은 전자가 될 것이다. 아일리쉬는 이미 10대의 확고한 우상이 되었다. 이 '홈메이드 아이돌'은 집 밖을 조금만 벗어나도 누구나 알아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대중의 관심을 피해 집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우상의 존재는 더 커질 것이다. 빌리 아일리쉬의 세상은 이미 전세계가 되어버렸다.
*Billie Eilish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 released on Mar. 29th, 2019 / Darkroom, Inter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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