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음악
머스탱이라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 유명한 미국의 헨리 포드가 세운 자동차 왕국 포드 모터스의 모델명이‘머스탱(Mustang)’이다. 일단 한 번 밟으면 멈출 수 없다는 기동력이 특징인데, 실제로 그 사전적 의미는 북아메리카의 어린 야생마를 지칭하니 그럴듯한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에 알파벳 S가 더해져 한 마리도 아닌 여럿의 울음소리가 림프관을 타고 진동한다. 헐거워진 숨을 겨우 내쉬더니 심폐소생술을 받고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고주파의 사운드가 가는 선을 치켜든다. 머스탱스다. 그것도 그 이름 그대로인 터보 엔진을 장착한 채로.
사실 이런 싸이키델릭 음악이 놀랄만한 감흥을 주는 것은 아니다. 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그 시대의 록음악에 죽고 못사는 30대 가량의 회사원이 가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맥주를 마시며 고단한 삶을 잊고자 한 때 그의 청춘을 살게 했던 도어즈를 땅콩 집듯이 언급하고 있을 때, 그 옆의 아무것도 모르는 애인은 퍽이나 좋겠다며 보란 듯이 졸고 있는 암울한 단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 싸이키델릭을. 소닉 유스의 앨범 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도 소닉 유스가 신종 게임인지 알고 있는 우울한 세대교체의 급진전에서 머스탱스가 놀라운 이유는 몇 안 되는 싸이키델릭의 계보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베팅의 까닭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본능적인 직감만이 따를 뿐이다. 오로지 직감에만 의존한 채 굉음을 끓여내고 애초에 멜로디는 존재하지 않은 음악이 존재했다는 듯 감각의 제국을 형성한다. 거기엔 질주하는 기타가 제대로 한 몫을 해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공연을 가져본 적이 있는 그들이 클래식 공연장만 있는 그 곳에서 기타 앰프가 없어 베이스 앰프 한 대만 놓고 신나게 놀았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도저히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발가벗지 않고는 꼴리지 않는 아담의 절대 불변의 법칙처럼, 머스탱스가 가진 역설의 속내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솔직하게 음악을 받아들이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극악무도한 들끓음이나 어처구니 없는 난장의 그저 그런 단면처럼 다가올 수 있겠지만, 일상의 잡음을 제거하고 머리의 흐름을 정지시킨 채 오직 이 소리에만 주목한다면 그저 그런 소리는 분명히 아니다. 몸에 오금이 저릴 정도의 아방가르드를 느낄 수 있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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