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에 있으면 썰렁해서 TV를 자주 켜놓는다. 책상에 앉아 할 일을 하면서 힐끔힐끔 뉴스도 보고, 가끔 재미있는 예능도 보면서 혼자 피식대기도 한다. 방금 엠넷(MNET)에서 '고등 래퍼 3' 재방송을 해줬다. 파이널 5를 뽑는 과정에서 기리보이와 키드 밀리 멘토 팀의 고등 래퍼인 릴타치(강현준)가 최종 탈락하자 아쉬워하는 멘토들, 그리고 키드 밀리의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 음악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사람들한테 잊히지 않으니까."
현재 힙합/랩 신에서는 잘나가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현업 래퍼의 치열한 경험이자 현재 진형형의 고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남편이 실용음악과 입시반에 있는 터라 실용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치열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소위 실용음악계의 서울대로 인식되는 서울예대를 시작으로 동아방송대, 호원대가 소위 실용음악계의 'SKY'가 된지 오래다. 경희대, 한양대, 성신여대, 동덕여대는 인 서울과 간판으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홍익대학교도 실용음악과 개설에 출사표를 던졌다. 실용음악과가 너무 많다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지방의 실음과는 언급하지도 않았다(호원대의 경우 초반 서울 캠퍼스를 만들어 기반을 다지고 군산으로 옮긴 경우다).
실용음악 또는 대중음악의 꿈을 안고 학원에 등록하면 그 안에서도 같은 꿈을 가진 무리가 새로운 사회를 형성한다. 물론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용음악 고등학교를 가지 않는 이상 이들에게 일반고는 이미 관심 밖 세상일 것이다. 학원 안에서 만들어진 아이들의 사회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추구하는 음악은 각기 다르겠지만 진학을 목표로 만난 사회 안에서 더 높아 보이는 사회(=대학)에 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넘사벽'인 아이들은 어디선가 항상 툭 튀어나온다.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방향의 가능성을 재며 '재수'로 가는 표지판을 세운다. 늘 열심히 뛰는 것 같은데 미처 보지 못한 양옆을 보니 뒤처져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 이들이라면 키드 밀리의 그 말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 것이다. 스트리밍 세대이기에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음원이 쏟아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스트리밍에 몸을 맡기는 소비자이자 쓸려가는 창작자 임도. 흐름의 속도가 점점 가팔라지는 음악 생태계는 창작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을 터다. 잊히지 않기 위해 하는 음악은 열심히 산다는 훈장 뒤에 불안의 상처를 안는다.
지금도 음악인이지만 미래의 우리 대중음악의 색채를 다양하게 해 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점점 늘어나는 실용음악과도, 실시간 순위 전쟁도 아니다. 경쟁이 지금의 K-POP을 있게 했고 음악 우수 인력이나 인재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창작자의 지속적 불안감과 고통으로 인해 이들이 음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할 무렵의 뛰는 가슴마저 잊히면 안 될 것이다. 나는 이 실용음악과 지망생들이 경쟁과 불안을 넘어서 다시 꿈의 기억을 찾을 때를 보았다.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관객들을 최대한 자주 만나는 것. 공연 앙상블에서 필요한 협력과 조화는 경쟁 구도는 잠시 내려놓고 결국 세상은 혼자가 아님을, 그리고 함께 할수록 잊힘의 불안감도 잊힌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남편의 학원에서는 이러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길거리 어디든 관객일 텐데 이런 장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의 시각만 조금 달라져도 가능한 이야기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