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 금요일

재주소년 [꿈의 일부]



소년들의 우주, 단지 꿈의 일부일 뿐
재주소년이라는 소우주에는 애프터눈(박경환)과 사보(유상봉)로 추정되는 몸통과 다리가 살고 있다. 기타 두 대와 그 밖의 주변인으로 사람 또는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며,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는 복잡한 연결고리들이 숲을 이룬다. 헌데 정확히는 이게 한 소년의 머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활활 타오르는 태양 같기도 하다. 재주 소년 3집 앨범 표지의 그림을 말하고 있다.
앨범 재킷의 변화만큼 음악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밴드도 드물다. 재주소년이 그 드문 경우에 속한다.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헤드폰을 쓴 첫 번째 소년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조그마한 겨울의 기억과 일상이 공명처럼 맑고 담백했다. 거친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사색의 순간이 돛대를 올릴 즈음에 두 번째로 ‘소년들’은 봄날의 소풍을 쪼여주고 있었다. 그제서야 켈라드리안의 숲(1집 수록곡)을 올라가고 있을 무렵, 저 위로 소년들은 둥지 같은 소우주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1집과 2집의 정서를 배반하지 않는 재주소년의 3집은 고농축 요쿠르트처럼, 시큼함과 씁쓸함, 걸죽함을 담은 건강 음료 같다. 여전히 배달시켜 먹고픈 마음을 들게 하는 멜로디와 편안함은 그대로이며, 다양한 악기가 나와 어쿠스틱 기타의 로망을 한껏 부풀어준다. 그런가 하면 팬들도 깜짝 놀랄 고성방가의 향연도 펼쳐지고,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어른의 송가를 부를 유상봉의 꺾기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소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전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며 전혀 예기치 못한 빛의 굴절을 보여준다. 게으른 일상을 그대로 포착한 ‘Sunday’와, 선원의 고단 일상을 스케치한 클래식 3악장의 ‘선원 21호실’, 한 곡에 두 가지 스토리를 들려주어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를 연상케 하는 ‘전쟁과 사랑’같은 시도도 잊지 않는다. 평소에 존경해왔다는 조규찬과의 작업 역시 눈에 띈다. 조금은 달라졌다. 드러나지 않는 내면이 일렁이고, 가슴속 깊이 숨겨온 웅얼거림이 폭죽처럼 터진다. 아주 조금 달라진 것뿐이다. 이런 이들의 소우주에 초대받고 놀다 가는 주변인들의 향연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이.
재주가 떠난 그 자리를 지금 소년이 메우고 있다. 슬플 줄 알았던 슬픔이 변함없는 음악으로 들려질 무렵 그 소년마저 아무도 없는 깊은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군대송’가사 중). 재주도, 소년도 없는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이들이 남긴 세 번의 파노라마를 번갈아 들으며 재주소년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 가끔은 펜을 들어 편지를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음악이 날 그렇게 만든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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