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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8일 화요일

time heals and the time of pondering comes back

그 힘들었던 시간이 딱 일주일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카페 사장님의 말처럼 지나갔다. 저번주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일단 영화를 많이 봤고 주말에는 툴루트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전시를 보며 그림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잠시 현실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요즘의 기후 변화로 봤을 때는 '거짓말 같은' 눈이 내렸다. 차가운 바람에 매섭게 스치는 눈보라가 되었다가도 상처로 얼룩진 피부 표면을 마치 하얀 연고처럼 덮는 듯한, 고요한 치유. 편의점 커피 한 잔에 초코 프레첼을 곁들이며 바라본 겨울 풍경이 나쁘지 않게 느껴질 때 쯤, 이제 정말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주부터 블로그를 정리해 나갔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낮에 스벅 출근 도장을 찍고 있으며 한량스러운 인생이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생산적인 인생을 사는 중이다. 댓글이든 개인적 사색이든 소설이든 글을 쓰는 행위는 인간이 가장 머리를 굴려야 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음 문장을 생각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장 실시간적이면서도 뇌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지금 당장 노후 준비는 못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치매는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경제 활동을 못하면 불안한 건 당연한데, 더 불안한 이유는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내 자신 때문이다. 다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이동하고, 움직이고, 목을 쓰고, 사회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어쨌든 아이들이라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다시 사회 활동을 한다는 것에 에너지를 얻었다. 좀 더 정확히는 내가 가르치는 일을 생각보다 좋아하고 잘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에 고무되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에는 정년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면 죽음이 있듯이, 사람의 수명이 저마다 다르듯이, 영원한 일자리란 없다. 직장의 정의도, 공간이라는 개념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물론 론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계속 유효하겠지만, 사교육의 개념과 형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결과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는 자신의 능력, 탁월함, 가치관, 취향과 같은 본질을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냐는 것이다. 파트 타임을 통해 해 본 여러가지 일들이나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 할 거라 예상했지만 무언가가 맞지 않아 오래가지 못한 일자리들을 제외하고는 학원에만 십 년 넘게 있었다. 그리고 정말 마흔에 들어서면 나를 찾아줄 학원들도 정말 드물어 질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나의 본질을 깨닫고 이에 맞는 쓰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직장과 직업이라는 문을 박차고 나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글을 잘 쓰진 못해도 못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다시 쓰면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건 아닌데, 일단 뭐든 쓰면 끝을 낼 줄은 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게 바로 영화인 것 같다. 영어도 좋아한다. 영어에 탁월한 사람이 너무 많아 영어를 잘 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영어로 쓰여진 매체 소비가 지속적이고 많은 편이다. 그렇게 쌓인 지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생들을 많이 가르쳤고, 중학생까지 괜찮게 감당했던 것 같다. 사고에 유연한 편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수정하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선호한다. 나의 성장을 위한 비판엔 열려있지만,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뱉어내는 비난은 용납하지 못한다. 약이 되는 쓴소리와 독이 되는 악담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리더를 자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타적인 편이고 적극적이라 막상 맡으면 잘 하는 편이다. 그러나 주목받는 건 죽어도 싫다. 조용한 지원자이지 협력자이고 싶다.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다. 검색 창으로 여는 세상의 팩트는 진짜가 아니라고 여기는 나만의 도그마가 있어서 매일 신문을 읽는다. 물론 신문의 모든 내용을 다 읽지는 못해도 그것을 통해 세상에 대한 시각과 촉각을 곤두세우려 한다.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비판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세상이 올바로 가는 방향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나만의 신념이나 예의가 좀 강한 편이라 이를 벗어나는 사람과는 친해지지 못한다. 친한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관계의 깊이는 자부한다.

영화와 음악을 사랑한다. 최근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더 깊은 편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영화를 좋아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취향을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글로 풀어내는 게 사유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사유의 질이 높아야 공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글을 쓸 때 동의어 반복이 잦은지 늘 체크한다. 요즘 우리말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한 사람의 글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생각과 생각을 하는 시간의 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모든 글에는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상대적이다.

사이버대 영어학과 재학 중에 지금은 미국에 가신, 내가 정말 잘 따랐던 교수님께서 내가 'elusive' 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단어가 매우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이 글과 깊어져만 가는 생각들을 이제 elusive 하게 끝내야 할 것 같다.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Words that will go unread, but...

네이버 블로그를 초기화하고 이 곳 구글 블로그에 예전 글들까지 차곡 차곡 정리하는 중이다. 과거에 썼던 글들 중 보기 민망할 정도로 '날 것의 20대' 느낌이 많긴 한데 글을 엄청나게 많이 썼던 것도 아니고 그나마 썼던 많은 것들은 노트북을 날려 먹는 바람에, 게다가 백업의 중요성도 탑재하지 않은 당시였기에 영원히 내 기억 속에 침잠해 버렸다.

글을 잠깐 올리고 태그를 설정하면 네이버에 갑자기 이웃이 몇 십 명씩 늘었는데 알고 보면 스팸 이웃이었다. 스팸(Spam)만도 못한 이웃들을 하나씩 차단하면 어차피 늘 한 두명이었던 터라 아무도 오지 않을 이 조용한 구글 eBlogger 마을에 정착하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누가 읽어줬으면 해서 쓸 공간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끄적일거라 네이버든 네이뇬이든 이블로거든 에플로거든 나에겐 상관없는 얘기다. 마흔을 앞두고 겨우 하나 건진 인생의 철학이라면 'Whatever' 정신만큼 건강에 유익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So whatever... (쓰고 보니 마흔을 앞둔 사람의 말투 치고는 너무 철없게 느껴져서 지울까 하다 이 역시 그냥 whatever 하기로 한다. 이럴 때 내 자신이 가끔 우디 앨런 할방구같이 느껴진다. 물론 앨런의 위대한 예술성은 별개다)

당분간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번역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하는데, 미천한 글 나부랭이들을 주섬주섬 모아 일단 '그래도 나는 생각하고 기록할 줄 아는 사람이오' 라는 증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는 나의 불완전한 이 공간을 십분 활용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 목적만 있지는 않다. 새해마다 리스트엔 항상 있었으나 번번히 실패한 '꾸준한 블로깅'을 이번엔 진짜 해내자는 개인적 목표의 성취를 이루려는 게 더 크다. 그런데 뭐가 되었든 가장 중요한 건, '쓴다는 행위' 그 자체다. 누군가에게 못 읽어줄 정도로 엉망인 글이 그 자신에게는 삶의 족적의 나열일 수 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일 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 어디있을까? 모든 것은 생각과 의미의 윤기를 더하느냐에 따라 결이 달라진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능력만큼 독보적인 것은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엔 인간의 글쓰기 능력이 추가되어야 한다. 나의 언어는 그 누구에 의해서 읽어지지도 않을것이며, 읽어지리라는 생각도 안하지만 그래도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헌 옷 기부 '옷캔(OTCAN)'

요즘 신문을 읽으면 환경 관련 기사는 좀 더 주의깊게 읽는 편이다. 집도 좁고 패션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 다른 집과 비교해서 옷이 많은 편은 아닌데 옷장을 볼 때마다 입는 옷보다는 옷장에 모셔두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늘 느낀다. 예전에 유니클로에서 자사 브랜드의 안 입는 옷을 매장에 기부하는 캠페인도 있긴 했는데 지속적인 것 같진 않다. 유니클로(UNIQLO) 같은 SPA 브랜드로 옷 구매에 대한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저렴하니까 생각없이 사는 경우도 많아 정작 그런 캠페인을 한들 매장에 발 한 번이라도 더 붙여 매출을 높이려는 상술로 밖엔 안보인다. 무지(MUJI)도 가끔 보면 외면상으로는 환경 친화적인 이미지인데, 물건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느낌도 들고. 암튼 특정 브랜드 비방으로 샜다. 링크를 걸려는 비영리 단체는 옷캔(OTCAN)이라는 곳인데, 2009년부터 아프리카, 인도 등 10여개 국가의 난민.소외계층과 국내 학대피해 아동시설 등에 옷을 기부하고 있는 구호단체라고 한다. 취지도 좋고 환경도 살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일을 하는 것 같아 나중에 정말 멀쩡한데 안 입는 옷들은 여기에다 문의해보려 한다. 참여방법도 읽어보니 소량의 옷 기부도 받는 모양이다.

This is the real re-starting of breaking the silence

때로는 인생의 어떠한 일에서, 특히 분노와 좌절감을 맛보는 사건들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십대 시절의 연애에서 겪은 헤어짐도 감수성의 원천이 되었고, 글을 쓰는 행위는 감정의 배설이었다. 그 이후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 후반이 된 지금까지 먹고 사느라 너무 바빴고, 바쁘다가도 한가했지만 한가함에 안주했고, 안주한 마음에는 원동력이 없어 창의성을 묻어두고 그저 사는데 급급했다.

그러던 중 최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을 경험했고, 감정을 분출하는 과정에서 이상하리만치 홀가분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실직했고, 다시 잉여의 삶으로 들어갔지만 전혀 잉여스럽지 않은 '창작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별 거 없는, 거창할 것 없는 방구석 창작이겠지만 한 개인에게 있어선 'life-transforming'한 일이다. 또한, 비록 크게 보면 별 볼일 없는 개인의 일상다반사라 할 지라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스쳐 지나가 기억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든, 쓰레기통에서 꺼낸 한 송이 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최근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존경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애정과 감사를 전하면서 한 말이다. 이는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었다.


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다시 시작

적막을 깨는 쪼랑2의 기지개 소리와 함께
나의 글은 다시 생산된다.
돌고 돌아 다시 이 적막한 곳에 왔구나.

Welcome back!


2011년 9월 8일 목요일

문득, 생각나는, 것

창가 밑 벽에 붙어있는 짐 자무쉬의 포스터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아 난 아주 먼 길을 걸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6월 23일 목요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순순한 칭찬에 그저 해벌쭉 걸어가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고,
누군가의 돌에 묵묵히 맞아주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다시 말해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서른의 기억속에, 너라는 사람은 참 바쁘게도 돌아왔다.
돌아오고 또 그 제자리의 언덕에서,
너는 이제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뛰어내리고, 헤엄치고, 기어가고, 걸어가고, 숨을 내쉰다.
그 숨을 기억하게 된다면, 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올 기억조차 하지 못할만큼
난 다시 즐거워 질 테니까.

2011년 3월 31일 목요일

화가 나는 밤이다.
동료는 부당한 이유로 원치않는 이별을 하고,
나는 졸지에 일하고 있는 실업자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믿음과 인내가 사라지는 밤.
저마다의 인생은 너무나도 소중한데
연필 한 다스, 한 다스 마냥 모두가 한데 묶여 똑같이 서 있기를 원한다.
과연 얼마나 이 지겨운 순간들과 마주하게 될까.

화가 나서 영원히 숨고 싶은 그런 밤이 여기 있다.

개새끼

세상엔 개새끼가 참 많다.
거짓말하는 개새끼.
힘든사람 더 힘들게 만드는 개새끼.
자기 잘못 부인하는 개새끼.
일부러 던진 돌을 쓱 버리고는 머리 긁으며 몰랐다고 거짓말하는 개새끼.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하지만 전혀 아는 게 하나 없는 개새끼.
개새끼는 자신이 개인 것을 모르며,
자신이 개새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개새끼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Earth matters.

구제역이라는 이유가 어쨌든 살아있는 목숨은 부질없이 땅에 뭍이고,
죽기 찰나의 직전까지 어미소는 새끼소에게 우유를 먹인다.
모정도 함께 숨을 거둔다.

그제 mbc에서 본 [아프리카의 눈물]에서는 물을 먹지 못해
쓰러져 숨진 코끼리가 시간과 햇빛에 말라버려 땅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브라운관 앞에서 그냥 숨을 죽인 채, 낯뜨거운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한 것이라면,
지금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저 바라보고 눈물만 흘린 채, 모두를 떠나보내는 그 순간까지 넋을 놓을 수는 없을거다.

슬픔을 구원으로 끌어낼 수 있는 생각과, 그 시간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사람이, 간다.

사람이 간다.
그 모든 사람들은 떠나고 나 혼자 덩그라니 남아있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나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아.
간다, 내가 너의 곁으로.

2011년 1월 17일 월요일

정보석의 보석같은 명언

[놀러와]에 놀러온 바쁜 아저씨 정보식이 말하기를
"안 되는 것은 안 한다."
단순하고 명쾌하고 뒷통수를 울리는 세상 경험 많은 아저씨의 조언.

새벽 생각

첫째, 페이스북은 여전히 불편하다. 얼굴책이라서 그런가보다.
둘째, [놀러와]를 숭배함. 다음 아저씨 편이 마지막이 된다면
박상무가 게스트로 꼭 놀러오기를...
마지막, [시크릿 가든]의 너무 밝은 해피엔딩이 그저 좋은 서른, 살.
엔딩따위 생각말고 그저 솔직하게 달려주길.

2011년 1월 12일 수요일

모든 것이 명확해지다

내 흐린 판단력을 잡아준 건 역시 몸이었다.
그래서 몸은 정직하다.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
그래. 그것도 받아들인다면 내 인생.

2011년 1월 7일 금요일

Tomorrow

내일은 일을 마무리 짓고
경진이와 식사를 할 거다.
가볍게 맥주도 한 잔 할 것이고,
최근 개봉작에 대한 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해 나눌 수도 있고,
아니면 담소로만 그칠 수도 있다.
빈이는 늦게 도착 할 수도 있다.
만약 경진이가 자고 갈 수 있다면
셋이 찜질방을 가고 싶다.
맥반석 계란을 까 먹으면서 실없는 농담도 주고 받고,
그렇게, 의미가 있든 없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

차가운 진실

지금 내 손은 차고
지금 내 손을 감싸고 있는 공기도 차고
마시다 남은 차이 티도 차다.

전기와 배터리로 돌아가는 스마트 폰도 차갑고
매일 온몸을 뒤덮는 이불도 차갑고
먹다 버린 귤껍질도 차갑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기억은 차라리 얼어버렸으면 좋겠다.
얼어버려 입에 넣고 녹이면 없어질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꿀꺽삼킨 기억은 쉽사리 배출되지 못하고
혈관을 맴돌아, 목덜미를 붙잡고, 속삭인다.

이게 내가 사는 세상, 이랜다.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글을 쓴다 씁쓸하면 삼키고 다시 쓴다

다시 쓰고 싶어졌다.
누군가 들어주길, 또는 봐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나에게 글을 쓰고, 대화를 하고, 안부를 물어보고.
너 잘 살고 있니라는 그 한 마디에,
잘 살고 있지도, 못 살고 있지도 않지만
끊임없이 그런 질문을 하면서 생각하고, 또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다시 글을 쓰는 연습이 필요함을 문득 느꼈다.

아, 내가 많이 인생에 착해졌음을,
프렐류드의 음악이 끄덕거리며 웃어준다.
좋은 밤.

싸댕 그리고 스물 아홉



너희들이 있어, 그래도 따뜻했던
내 지난 스물 아홉 해.
그리고 이제 서른.

내 인생의 시끄러운 잡담꾼들 너희들이 있으면
가고 있지 않아도 여기는 뉴욕.

Thank you for you all to be now and then.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비'내리는 자신감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대던 어느날엔가 [2010 MTV Movie Awards]가 나오길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동네 바보처럼 빨려 들어갔다.
'로버트 패틴슨'과 '트왈라잇'이라는 말만 나와도 꽥꽥대는 비명이
살짝 짜증나는 시점에 테일러 로트너(뢋으너~)가 곁에있어 괜찮았고,
스칼렛 요한슨(요즘 스타일로는 조핸슨이지만, 지식인처럼 요한슨이라 하자)과
산드라 블럭(21세기엔 샌드라 불럭이지만, [로드쇼]의 느낌으로 돌아가자)의
계산된 키스는 백지장이 파르르하고 떨 정도의 미세한 긴장감이 엿보여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가장 큰 웃음주신 탐 크루즈의 거친 무대매너는 MTV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동적인 스테이지가 아니었나 싶다.
웃고, 떠들고, 보여주고. 상업화의 최전선에 있는 MTV를 누가 욕한들
MTV는 그냥 MTV일뿐. 이런 단순한 애티튜드가 때론 부럽다.
이 단순한 애티튜드에는 '우린 이래. 너희들도 좋든 싫든, 좋다면 웰컴 투 MTV.'
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와 포용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각설하고, 정지훈 그러니까 레인은, 이번 MTV에서의 [Badass Star] 시상으로
애티튜드의 첨단에 서게 되셨다. 시상 소감은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좋겠지만,
언제나 오버하는 액센트와 발음으로 "I appreciate it."으로 순조롭게 테잎끊고
"You know, it's a badass star. So, I've been working out. Ha(엉덩이 찰삭)"
라고 말하는데, 순간 분위기 싸해지는 현재 애들 앞에서도 꿀림이 없는 정지훈군의
'비'내리는 자신감을 여과없이 브라운관으로 확인하고 나니, 눈물이 '비'가 내린다.

"에이쒸, 동창 새끼는 미국에서 상 받는데 우린 면목동에서 오란씨나 사러 나오고..."
정지훈의 고교 동창인 경진이의 친구 혜미가 술마시고 해장하러 오란씨를 사러 나오면서 말했다.




2010년 5월 5일 수요일

제목 없음

노트북 옆에는 아까 마시다 남은 아이스 커피가
밍밍하게 버려져 있다.
[박찬욱의 오마주]는 읽어주기 만을 기다리고 있고,
공기는 습습하며 창가는 어둡다.
옆방의 빈이는 책을 읽다 잠들었으며,
당장 내 앞에는 거대한 일'덩어리'가
나를 노려보며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서있다.
그래서 어떡할거냐.
소위 요즘 애들처럼 말해볼까, 쉬발존나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