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페이스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형체들, 포맷되지 않다
음악이나, 영화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묘하게 몰고 가는 구석이 있다. 사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나의 일촌이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배경음악을 깔고 있다면
사이좋은 사람들끼리의 기분은 대개 착잡해진다. 이제 더 이상 남조선이
북조선을 한 핏줄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햇빛정책을 펴는 것과 같이, 나와 기호가 같아 "반갑스읍니다. 반갑-스읍니다아~"는 공개 석상에서나 통하는 법. 내심 나만의 정보를 아끼고 또 아낀다. 국방부 엑스 파일처럼.
이제 더 이상 씨디를
사서 듣고, 매달 음악잡지를 모아가며, 또는 그
음악잡지 안에 '펜팔 구합니다. 나이는 스물, 모던 록을 좋아하고...'와 같은 광고를 통해 동지를 만나지 않아도 알아서 원하는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월드
와이드 웹에 살고 있는 우리다. 적어도 발품
팔아가며 음악 들었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으니 내가 아는 음악 남이 안다고 해서 억울할 것도 없다. 사실 더 포맷(The Format, 이하 포맷)의 경우도 그랬다. 가끔 즐겨 찾는 바(Bar)에서 뮤직 비디오를 보고는 '완소(완전 소중해)'를
날림과 동시에 6차 원칙에 근거하여 밴드의
행방을 물어봤건만, 음악 틀어주는 DJ님 왈 "인터넷을 통해 아는 외국 친구들이 보낸 준거야." 라는
모호한 그 한 마디. 언감생심에 오기가 생겨서 구리디 구렸던 화질에 왼쪽 하단에 표기되었던 글씨가 기적처럼
떠오르리라 믿고 머리 속으로 나름의 몽타주를 작성했다. "포...
포 포맷!!!" 이름만 알고 나니 그 뒤로는 찾기가 꽤 수월했다. 이 신출내기 밴드가 올뮤직에
등록되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마이 스페이스와 유투브의
세상에서 포맷은 미국 인디 씬의 기대주였다. 그들이 EP로
제작되었던 1집 를 발표했던 2005년의 일이다.
더 이상 외국 인디는
케이블 채널에서나 가끔 해 주는
같은 10대 드라마의 남다른 취향을 지닌 주인공
소년의 전유물도 아니었고, 의 연진이 인터뷰 때 내게 말했던 '영국에 가기 전에 느꼈던 인디 밴드들에
대한 왠지 모를 환상'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마이 스페이스 속 밴드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여기서
공연하는데 올 거죠?" 하고 일상 대화같이 물으며,
유투브에는 방금 올린 따끈따끈한 라이브가 클럽에 버려진 버드와이저 맥주병처럼 나뒹군다. 더
이상 미국에 사는 친척에게 편지까지 보내서 음악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함과 동시에 소포를 부탁할
필요도 없다. 마스터 카드같이 해외 통용 카드만 있다면 아마존과
이베이에서 기쁜 비명을 지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음악 매니아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홍대 근처 소규모 레코드 샵에선 친절하게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씨디 들을 예약 한 번에 구해다 준다.
그렇게 포맷의 1, 2집을 모두 구하고 나니 완전히 나만의 밴드로 만들어버린 기분이었다(그리고 몇 달
뒤, 싸이월드 뮤직에서 판매 중이었다). 그리고 1집을 들어보니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난리 칠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것도 아니었고, 국내에선 그렇게 인기 없다는 미국 냄새 폴폴 나는 전형적 '미국' 모던 록이었다. 게다가
시종일관 피아노를 두들기는 샘 민스(Sam Means)는 벤 폴즈(Ben
Folds)의 짝퉁 처럼 느껴졌다. 귀에 홀랑홀랑 감기는 이지 리스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감점을 면해줬지만, 두고두고 꺼내어 들을 만큼 사랑 받기엔 이미 MP3로
섭렵한지라 귀하신 몸에서 '내겐 너무 가벼운 그
놈들'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들의 2집인 은 씨디 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기존의 투명한 플라스틱 씨디 케이스가 아닌 부들부들한 종이 재질이다.
매우 얇다. 그리고 씨디를 펼치려니 개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온다. 이어서 개 두 마리, 개 세 마리.
진정 '개들이 문제' 였던가. 이 문제의 아트워크 역시 포맷의 샘 민스 였다. 1집 씨디 재킷에 눈, 코, 입 없는 사람 한 명 찍
갈겨서 그려놨던 그 아니었던가. 이들의 홈페이지엔 샘 민스의 감각을 두루두루 덧칠한 티셔츠와 그 외
머천다이즈(Merchandise)가 판매 중이었다. 더 이상
마이 스페이스 안에서만 놀기엔 마케팅 매니저까지 갖춘 귀하신 몸들 되셨으니, 결코 가볍게 볼 밴드는
아니라는 어줍잖은 결론을 내렸다.
음악 또한 일취월장했다. 세션까지 합쳐서 총 여섯 명이지만 둘이서 지지고 볶고 다 해먹는 네이트 러스(Nate
Ruess)와 샘 민스(Sam Means)는 수록 곡
'Dead End(‘4 Non Blonds’의 린다 페리가 참여했다)'를 제외한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했으며, 편곡 솜씨 또한 몰라보게 좋아졌다.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프렌치 혼,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 다양한 소리를 통해 단조로움을 없애고 세션들과 함께 '호보쵸어 캠프'라는 이름을 붙인 합창단의 코러스를 곳곳에 집어넣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래서인지
단박에 떠오르는 것은 퀸(Queen)의 ‘Bohemian
Rhapsody’. 그러나 이번 앨범의 화두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이다. 한 번 들으면 가사까지 넣어가며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멜로디는 세상 걱정 모르고 서핑이나 타고 놀아보자던 아름다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에 가사를 잘 음미해보자. 'Time Bomb'에서는 역시 비치
보이스를 떠올리게 하는 인트로에 사랑했던 여자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내 인생 망칠려고 제
맞춰 온 너는 시한폭탄, 시한폭탄.' 그 어떤 분노도, 걱정도 없는 카페테리아 속 아이들의 연애담에 제 맞춰 배경음악 깔아주는 21세기
비치 보이스 같다고 할까?
이러한 난장에서도 결국은 'Back to the Basic'이다. 벤 폴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브라이언 윌슨의 위대함이 아름다운 멜로디에서 오는 것처럼 이들은 어쿠스틱 피아노와 따뜻한 기타
사운드를 가지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메이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카테고리엔 항상 인디 밴드의
범주 안에 놓여있고, 마이 스페이스의 뮤직 마케팅을 120%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밴드들 중 하나의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그런
시선에는 관심 둘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집 의 동명 타이틀곡 뮤직 비디오 촬영을 마쳤고, 브리티쉬 인베이젼의 주역 중 하나였던 60년대 밴드인 더
킨스(The Kinks)의 고전 곡을 포맷식으로 풀어낸 앨범 을 발매했다. 또한 포맷 머천다이스를 20달러 이상 구입한 고객에 한해 이 앨범을 뿌리는 고감도 마케팅 역시 잊지 않고 있다. 이 남서부 아리조나 청년들이 미국을 사로잡고, 세계로 뻗어가는 것이
그리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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