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you've been there before
음악에 귀를 OFF하고 살아도 트렌드까지 모르기 싫은 아이러니 덕택(?)에 NPR이나 NY TIMES의 [Best of 2018]이나 피치포크(Pitchfolk)의 [Best New Album]은 간간히 챙겼다. Snail Mail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열 아홉(작년에 열여덟이었던 것으로 안다)살 뮤지션 린지 조던(Linsey Jordan)의 데뷔 앨범인 [Lush]는 2018년 여름부터 당해 연말까지 시종일관 베스트로 꼽혔던 앨범이다. 작년에는 렛츠 잇 그랜마(Let's Eat Grandma), 미츠키(Mitski), 줄리언 베이커(Julien Baker)의 프로젝트 밴드인 보이지니어스(boygenius) 등의 여성 아티스트들이 눈에 띄었지만, 음악적 평가에서나 존재감에서 스네일 메일이 독보적이지 않았나 싶다(물론 미츠키의 'Nobody'가 너무 중독적이긴 했다. 노바디의 뒷심이란).
스네일 메일의 의미를 찾아보니 'Snail'은 말 그대로 달팽이의 속터지는 느림을 생각하면 될 것이고, 'Mail은 말 그대로 우편을 뜻한다. 'Snail Mail'의 반대 개념이 'E-Mail'일 것이다. '보내기' 클릭 한 번이면 바로 도착하는 이메일과 달리 우체국에서 엽서를 사다 접수를 하고 부치고 수취인에게 전달되는 손편지 말이다. 내가 초등학생일때 외국 펜팔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한 미국 소녀를 소개받아 엉성한 영어로 편지를 보내고 한 달이 넘어서야 답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정도의 느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99년생인 린지 조던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Z세대'인데 나 같은 펜팔 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자신을 스네일 메일이라 칭한걸까. [Lush]는 그에 대한 대답같다: "꼭 살아봐야 아나."
그 어투는 반드시 어수룩하지만 요즘 세대 특유의 쿨내가 묻어나야 한다. 적어도 내 상상속의 린지 조던이라면. Tiny Desk의 스네일 메일을 보고 나면 감이 올 것이고, [Lush]를 전체 청취하면 확신이 생길 것이다.
낮게 읊조리는 인트로를 시작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들었던 2번 트랙 [Pristine]은 거친 리즈 페어(Liz Phair)나 피제이 하비(PJ Harvey)를 21세기 버전으로 부드럽게 깎은 느낌이다. 쥬얼(Jewel)의 [Pieces of You]가 생각나는 어쿠스틱한 시작은 힘이 들어가지 않은 무덤덤한 보컬에 정제된 사운드로 가다 순간적으로 90년대 스타일의 드럼과 기타 앙상블을 만든다. 이어지는 [Speaking Terms]의 기타 소리는 흐린 날의 트래비스(Travis) 같은데 후반부에 전혀 다른 양상의 멜로디가 겹쳐지니 뻔하지않다. 그런지(Grunge)한 느낌을 원할 때쯤 [Heat Wave]가 나온다. 저자세(?)를 취하던 조던이 코러스에서 보여주는 약간의(정말 약간이다) 샤우팅에선 별안간 달팽이가 빠르게 걷는 시원함마저 든다. [Let's Find An Out]은 사운드의 하울링과 마이너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Golden Dream]은 [Pristine]의 연장선에 있는 인상을 주지만 [Pristine]의 시그니쳐 사운드를 후반부에 각인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나쁘진 않다. 끝에서 두 번째 트랙인 [Deep Sea]는 Mazzy Star의 [Fade Into You]를 '독창적으로' 닮기까지 했다.
가사를 세세하게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스네일 메일 세대(1O대)라면 흔히 느끼는 또래의 보편적인 사랑(그들의 세상에는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과 관계가 부서지고 떨어진 파편들을 줍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계단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는 무기력한 마음을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Z세대가 아니라서 알 수 없는 상처받은 10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또래처럼 공감하긴 어렵겠지만, [Lush]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가는, 10대에서 20대로 향하는 나를 돌이키게 함과 동시에 세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지점에 이르게 한다.
"Like you've been there before, I've BEEN THERE before."
*Snail Mail [Lush] / released on Jun. 8th, 2018 / Matador / Indie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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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4일 금요일
Snail Mail [L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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