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8일 화요일

Daughtry [Daughtry]


















어메리칸 아이돌 출신 록커의 뚝심

미국 FOX사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자, 이젠 미국 전역뿐 아닌 전세계의 채널에 파고든 어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에서 언제부턴가 록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팝 발라드를 부르던 켈리 클락슨, 덩치만큼이나 소울풀한 루벤 스터더드, 썰면 한 접시는 나올 도널드 덕 입술로 재즈 스탠다드 ‘Summertime’을 불러 심사자 사이먼의 지지를 얻은 판타지아. 주로 팝 발라드나 R&B, 클래식 소울이 선곡의 전유물이었던 이 대회는 시즌 4에서 보 바이스와 콘스탄틴 마룰리스를 맞으면서 또 다른 취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록커가 두 명이나 있었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 바이스만 하더라도 우승자인 캐리 언더우드와 막판 경합까지 벌였으니 시즌 4에서 터질 것 같은 록 사운드와 보컬을 듣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시즌 5부터는 다시 록의 열기가 잠잠해지긴 했지만,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가정적인 이 남자, 크리스 도트리(Chris Daughtry)의 존재로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참 특이했다. 어메리칸 아이돌이 가족 단위로 즐겨보는 프라임 타임 쇼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는 된장독보다 더 굳건한 뚝심으로 투표에 떨어지기까지 몇 달 동안 포스트 그런지 곡들로 자신을 밀어 붙였다. 딱히 특별한 쇼맨쉽이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어찌나 말수는 적은지 진행자인 라이언 시크레스트의 질문에만 묵묵히 대답하거나 멋쩍은 웃음을 보이곤 했던 크리스 도트리가 쇼 이후, 데뷔 앨범인 [Daughtry]를 들고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도트리의 이 앨범은 발매 하자마자 빌보드 앨범차트 ‘4’위 안에 들었고, 2007‘4’월까지의 전국 공연 스케줄 중 대다수의 티켓은 이미 매진상태다. (어메리칸 아이돌에서 4위에 머물고 만 그에게 ‘4’라는 숫자는 멋진 컴백이 되었다.) 3위의 엘리엇 야민은 아직 앨범 소식도 없고, 2위의 캐더린 맥피가 2007 1월 말에서야 데뷔 앨범을 내 놓는 것과 비교하면 도트리의 뚝심은 쇼와 관계없이 팬들에게 통했던 모양이다.

앨범 [Daughtry]는 전체적으로 퓨얼(Fuel), 크리드(Creed), 니켈백(Nickelback) 같은 포스트 그런지 밴드들의 사운드를 옮겨놓은 것 같지만, 도트리만의 감수성으로 어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자주 지적되어왔던 흉내내기를 벗어나 확실히 그만의 분위기를 구축하고 있다. 첫 곡 ‘It’s Not Over’의 도입부만 들었을 때는 채드 크루거의 음성이 떠오르지만 서서히 진행되면서 도트리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깔끔한 파워 보컬을 선사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면 더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의 ‘Home’도 호소력 짙고, 슬래쉬가 세션 참여를 한 ‘What I Want’ WWE에 삽입되기도 했던 샤인다운(Shinedown)의 야성미와 맞먹는 거칠 것 없는 남성미가 질주한다.

최근 급부상 하고 있는 인디 록이나 메이저의 이모코어 파워에 맥을 못 추고 있는 기존 포스트 그런지 밴드들의 잠잠함이 못내 아쉬웠던 팬들이라면 도트리의 앨범으로 적절히 위안받을 수 있을 듯하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어메리칸 리젝트의 앨범을 작업했던 하워드 벤슨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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