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노나에게,
위노나, 혹자는 친근감을 갖고자 노니라고 불리는 위노나. 그렇지만 난 노니라고 부르는 게 영 내키지 않아요. 무언가 그렇게 부르는 짓은, 친근감을 혹사시키는 아는척인 것 같아요. 뭐 별소리는 아니지만 난 위노나라 부르는 게 좋아요.
사실 위노나 매니아들에게는 필수작이라 했던 비틀 쥬스는 못봤답니다. 그냥 팀 버튼이 안 땡기는 날도 있어요. 난 과히 공상과학적이지도, 뛰어난 상상력을 지니지도 못한 사람이기에 가끔은 팀 버튼의 괴기한 상상력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최근에 읽은 '굴 소년의 죽음'은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울었어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교보문고의 한 가운데에서 말이죠. 마이클 키튼과 지나 데이비스의 딸로 나왔었나요? 비틀 쥬스는 그냥, 위노나의 필모그래피 중 하나인거죠.
죠니 뎁을 싫어하는 소녀는 없겠지만, 난 당시 '21 점프 스트리트'의 아이돌이었던 죠니 뎁에게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나 '가위손'은 그저 당신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봤어요. 어울리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혹평했던 금발을 했지만 브루넷에 지쳐있던 나는 가위손의 금발머리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80년대 금발들을 떠나보낸 브루넷 스타들 중 한 사람이었던 당신이 금발을 했다는 거 자체가 중요했어요.
10대 소년들과 줄곧 있던 당신이 사각거리는 드레스 폭에 싸여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광기의 카리스마를 지닌 아저씨와 함께 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마틴 스콜세지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캣우먼도 당신 앞에선 꼬리를 내렸습니다. 말 그대로 위노나가 있었기에 그저 순수해 보이기만 했던 '순수의 시대'였어요. 하얀 빛이 무색해지는 그 웃음에 골든 글로브는 빛나는 트로피를 당신 손에 쥐어주었죠.
그렇지만, 왜 나는 당신이 조금은 빗나간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의 위노나를 보고 있노라면 나이는 조금 먹었지만, 조금도 자라지 않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안에서 시퍼렇게 멍이 든 옛날에 대한 애착이 보입니다. 먹고 살려면 별 수 없나봐요. 벤 스틸러는 코미디라는 치질에 걸렸습니다. 마이클 리만과는 연락 해 봤나요? 혹시 팀 버튼은 죠니 뎁에게 "야, 요즘 위노나는 뭐하고 사니?"라는 못미덥지만, 그래도 애정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 안했다고 하나요? 스크린의 당신에겐 '당신'이 없어서 영화보는게 재미 없어졌어요.
나는 아직도 이따금 노트북에 저장된 '웰컴 홈, 록시 카마이클'의 당신 사진을 봅니다. 저런 지랄삼발 머리에 조금은 어둠이 짙게 깔린 불만 많은 소녀의 모습이 난 좋아요. 가끔 다른 사진을 찾기 위해 야후를 들어가면 당신을 위한 성전들은 부서졌고, Times New Roman 글씨체와 야광색이 번쩍대는, 인터넷이 생기기 시작한 시대에나 볼 법한 싸이트에선 아직도 당신은 '록시 카마이클'의 딩키였고, '헤더스'의 베로니카로 남아있어요. 루카스를 사로잡던 20세기 보헤미안 꼬마, 온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자신과 이 세상이 폭파되었으면 좋겠다는 JD의 멸망을 지켜보던 베로니카, 자무쉬를 숨 죽이게 한 줄담배의 택시 드라이버 아가씨, 캠코더를 들이대며 세상에 F 워드를 날리면서, 한편으로 그저 그런 삶에 기꺼이 숨 한 번 내쉬고 춤을 췄던 릴레이나. 과거를 잊지 못하는 현재 부적응자, 나 같은 사람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요. 더 낵의 'My Sharona'가 흐릅니다.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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