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름을 구실삼아 가벼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뭉친 친구 녀석들은 하나같이 나를 두고 살 좀 빼라는 말만 해댔다. 예전에
입던 옷들이 맞지 않다든가 하는 비공식적인 사실은 감지했지만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으니 린치당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스트레스는 고혈압이 되고, 고혈압은 태양보다 붉은
화(化)를 돋우니 물놀이를 하면서도 썩 시원찮은 기분이 들지
뭔가.
다이어트 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나는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일, 아니
글 쓰는 행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든다. 어쩌면 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진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 자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블루바톤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름대로
원대한 포부가 있었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또한 글을 쓰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워 앨범 리뷰의 경우는 다른 필진에 비해 늦게 합류했다(어쩌면 용기가 부족한 탓이었는지도). 처음 몇 달은 글을
쓰면서 감을 익힌다고 생각했고, 일 년이 지나자 자신감이 생겼으며, 이후엔 꼭지만 주어진다면 뭐든지 쓸 수 있겠다는 배짱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음악에 관련된 글을
쓰는데 다수의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과연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리뷰를
써야 할 해당 뮤지션의 씨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만 뽑아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스트리밍 싸이트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가 허다했다. 한 달에 일정 금액만 되면 수만 명의 음원을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지 않냐는 이유와 함께. 그런 나의 리뷰는 고작 몇 천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 자괴감이 들었다. 하나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하며 유통 단계를 거쳐 비로소 정가가 매겨져
우리에게 오는 건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지 않았나.
중, 고등학교 때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벌고 한 달에 18만원을
벌면 껑충껑충 뛰어가 종로 2가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던 타워 레코드와 뮤직랜드를 찾던 것이
유년 시절의 낙이었다. 한 장당 2만원이나
했던 수입 씨디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흥분에 젖어 재킷을 면밀히 살펴보고, 또 보고
정거장을 놓친 기억이 있지 않았던가. 내 가장 친한 친구와 주말이면 드럭이라는 홍대 앞 클럽에
찾아가 고막과 콧구멍에 땟물이 배길 정도로 뛰고, 뛰고 또 뛰고 난 뒤에 배가 고파 먹던 떡볶이에
심취하여 막차를 놓치고 을지로 2가 파출소 안에서 새벽잠을 청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게 18만원이라는 돈이 주어지고,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NO’가 될 게 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은 나의 열정이 식어버렸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접히는 배와 퉁퉁 부어 오른 다리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키보드만 누르면 뭐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어쩌면 나의 비만도 당연했던 것을.
결국 폐부를 찌르고 굳어버린 지방 덩어리를 긁어내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닐까. 친구들
말대로 운동을 해야겠다. 걷고 또 걸어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가다 보면 유연하게 헤엄치는 나의
글을 발견할 수 있겠지. CD 정리를 다시 해봐야겠다. 이번에
존 메이어의 신작이 나온다는데 그것도 살 겸 해서 몇 장 더 골라봐야지. 주말엔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 그 어떤 장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쯤
해서 칼로리 계산법은 버려도 될 듯싶다.
안현선
jjorang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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