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8일 화요일

일롭!(Elope!) [Elope! People]





















대중 음악계, 그 중에서도 한 장르 내에서 나름대로 개척자 정도의 위치를 지닌 밴드 또는 솔로 뮤지션들은 몇몇 있기 마련이다. 이 파이오니어들이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나누자면, 전자는 그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줌으로써 안정된 틀을 가지고 더 새로운 음악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긍정성이나, 후자로는 같은 장르 안에서 음악을 하면서도 선배와 어쩔 수 없이 비교 당하게 되는 난감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루브와 전자 사운드를 중시하는 밴드인 경우, 비교 대상이 대략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롭은 어느 특정인을 두고 비슷하기 보단,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비유한다면 노르웨이산 스무드 애시드 재즈인 디사운드의 부드러움과 캐스커의 즐거운 일렉트로니카를 닮았다. 몇몇 곡들은 그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인트로로 쓰인 ‘Eager to Elope!', 타이틀곡인 ’Rain Shine and Fire'가 대표적이다. 가볍게 몸을 흔들어도 좋은 발랄한 비트와 자꾸만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코러스가 매력적인 ‘Loveride', 소울사이어티를 연상시키는 허스키한 보컬의 음색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 ’Soulful'. 그러나 여기까지만 좋고 다음부터가 문제다. 이어지는 트랙들 모두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요즘 장르들을 억척스럽게 끌고 가려다 그동안 귀에 착착 감겨왔던 멜로디들조차 겉돌게 되는 아쉬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디사운드 내한공연의 오프닝을 맡았던 만큼 탄탄한 실력을 자랑하는 일롭에게 앞으로 우리가 기대하고 싶은 부분은 ‘일관성’이다. 한 우물만 잘 파면서도 나름대로의 색을 잃지 않아 승승장구하는 롤러코스터처럼, 그들 또한 점점 더 복잡해지는 현대 음악 속에서 살아남는 파이오니어가 되었으면 한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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