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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8일 화요일

십만원 이야기

예전에 자기소개서 작성 때문에 일부러 자원봉사, 게스트 관련 뱃지들을 스캔했다. 새삼스럽게 올려보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보고 있으면 흐뭇한, 과거 지향적인 나의 게으른 대리만족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를 사유하고 싶었다.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영화제에 닥치듯 참여했던 것도 나만의 영화가 있을거라는 착각이 있어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제는, 지금은 사라진 십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다. 거기엔 '내'가 있었고 '우리'가 있었다. 귀차니즘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비디오 아트에 대한 소신이 있었고, 가끔 보면 귀엽기까지 했던 최소원 프로그래머(언니로 불렀었다. ㅋ), 전투적으로 글을 썼던 미혜언니는 가끔 최소원과 상극같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정미 언니. 언니라는 칭호가 정말 안 어울리게 무뚝뚝하고 보이쉬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언니라고 부를 때 웬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십만원 사람들 중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정미 언니를 찾을거다.
나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자만심은 준석 오빠를 만나고 무너졌다. 군대 가기 전에 스태프 일을 했던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맹목적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작가주의 영화가 좋아서도, 액션 영화가 좋아서도 아닌 그냥 영화 그 자체로 좋아했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런 열정의 일면이 류승완 감독과 비슷하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충무로 데뷔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는 거였다. 얘기를 듣고 빈 속에 소주 한잔을 벌컥 들이킨 것 처럼 속이 뜨거워져 왔다.
문창과 출신의 서희 언니와 덕주 언니는 판박이였다. 미장원에서 길들여질 수 없을 것 같은 긴 머리와 피어싱이 둘을 도프갱어로 보이게 했다. 성격도 아주 비슷했다 내 기억엔. 직설적이고, 자기애가 강했다. 나는 그런 표현에 매우 서툴렀는지 처음엔 이 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순전히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녀들은 누구보다 날 잘 챙겨주었다. 고마웠다.
한예종에 들어갔다는 문재하 언니도 기억난다. 난 그녀가 좋았다. 몇 번 보지 않아도 다시 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녀 주변엔 항상 좋은 공기가 머물렀다. 옛날 카이 잡지엔 재하 언니와 라디오 레이블의 고기모씨와 내가 찍은 사진이 있다. 얼마전 논문 작업 때문에 자료를 찾다가 고기모씨의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페스티벌을 겪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김영룡이라는 친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독립 영화같은 존재였고, 지금도 그러리라 믿는다. 영룡과 나는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신촌과 이대 그리고 대학로 등지를 돌아다녔다.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친구와 나는 행복했었다. 독립예술제(지금의 프린지)에서 만난 상준 오빠와 티구의 인연은 신기했다. 독립예술제 피날레를 마치고 밤길을 걸어가며 "언젠가 인연이 있으면 보겠죠."라는 말과 함께 헤어지고 정확히 한 달 뒤 십만원에서 만나 얼떨결에 퍼포먼스까지 하게 되었다.
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는 아날로그 8미리 비디오 영화에 자극받고, 신촌 '꽃'에서 항상 모여 맥주를 마시며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십만원 사람들이 다시 모였으면 좋겠다. 그 곳엔 나만의 영화가 있었노라는 고백과 함께.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I'm sorry

이미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좀 더 나빠져서 당신이 아픈것만큼이나
비난받고 버림받으면
그때서야 정말 미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내 바보 같은 입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미안하다 말을 해.
다신 주워담을 수 없는 사랑과 추억과 시간과 말.

My Stupid Mouth
아티스트 : John Mayer앨범타이틀: Any Given Thursday

선인장
아티스트 : 캐스커앨범타이틀: Skylab

Tango
아티스트 : Morelenbaum2 / Sakamoto앨범타이틀: A Day In New York

Anytime

아티스트 : Brian McKnight앨범타이틀: From There To Here

More than you know

당신이 아는것보다 나는 힘들다.

당신이 아는것보다 나는 절망스럽다.
당신이 아는것보다 나는 고민이 많다.
당신이 안다고 말하지 마라.

I Know
아티스트 : Familiar 48앨범타이틀: Wonderful Nothing

Daughter
아티스트 : Pearl Jam앨범타이틀: October 22nd 2003

Name
아티스트 : The Goo Goo Dolls앨범타이틀: A Boy Named Goo

Calling All Angels

아티스트 : Train앨범타이틀: My Private Nation

days go by

날이 지나갈수록 무서운 것은,

나이를 먹는다든지
미간을 찌뿌리면 이마에 주름이 확연해진다든지
착하게 굴어도 착해 보이지 않더라는 그런것보다는,
잊지 못할 과거와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였다.
아주 길게는 우울증까지 섭렵해버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아 몸에 군더더기가 좀 붙었다.

Just The Two Of Us
아티스트 : Bill Withers앨범타이틀: Lean On Me: The Best Of Bill Withers

Liquid Streets
아티스트 : Roy Hargrove앨범타이틀: Hard Groove

Ribbon In The Sky
아티스트 : Stevie Wonder앨범타이틀: Original Musiquarium

Call My Name

아티스트 : Prince앨범타이틀: Musicology

벙어리

인생도 글도 음악도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다지 할 말이 없어져서 슬프지만
또 그렇다고 할 말이 없어서 못살겠는것도 아니다.
오늘은 봄날씨라 하기엔 밖이 많이 춥다.
공중전화에 대고 "잘 살지요." 라고 했던 그 무수한 옛날은
별이 된걸까, 아니면 인공위성일까.
갑갑한 마음에 담배라도 한 대 물면 그는 속이 풀릴까.
기름종이마냥 찍어낸 옆집 아저씨의 담배시간 실루엣은
오늘따라 내 방을 더 압축시켜 낸듯하다.
말이 자꾸 거꾸로 나온다. 벙어리야.

To Sheila
아티스트 : The Smashing Pumpkins 앨범타이틀: Adore

Southern Girl
아티스트 : Incubus 앨범타이틀: A Crow Left of the Murder

My Head Is My Only House Unless It Rains
아티스트 : Everything But The Girl 앨범타이틀: Like The Deserts Miss The Rain
Brick

아티스트 : Ben Folds Five앨범타이틀: Whatever And Ever Amen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봄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일산에도 봄이 왔다. 다행히 이 지역 최근 미세먼지 상태가 양호 또는 보통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일요일이었던 어제 호수공원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건 일산 살면서 처음 본 것 같다.
개나리는 거의 만개한 것 같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개나리가 좋다(욕하는거 아님).
봄의 왕비(?) 같은 목련도 활짝인다. 목련은 우리에 눈에서 새하얀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장렬하게 떨어진다. 목련을 볼 때마다 뭔가 울컥하다(하지만 진짜 울지는 않는다).
오랜 동료이자 친한 J쌤이 꽃사진 찍으면 나이 든 거라고 했는데, 실제 숫자 상으로 나이가 든 게 맞으니 꽃이 좋아질 수밖에... 그런데 핑크색 진달래를 찍다니... 젠장
민들레인가? 마른 풀에 노란색이 있으니 조금 생기가 도는 듯하다.
오늘 외출차 집에서 나오는데 동네 앞 벚꽃들이 어제만해도 조용했는데 오늘 많이 기지개를 켰다. 봄이 오고 날씨도 조금은 따뜻해지고 3월 초반 유례없던 연속적 미세먼지에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던 나날들의 연속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데 점점 비소식은 듣기 힘들고, 땅과 나뭇가지들은 퍼석하게 말라가는 것 같아 걱정된다.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지구의 대지가 없는 힘을 짜내어 꽃을 피우는 모양새가 딱하다. 고통이 무색하리만치 우리에게 봄을 선사하고 기다리는 내년, 내후년의 봄에 나무들은 버텨낼 수 있을까. 우리의 뉴노멀은 자연의 고통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풍요로움 속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버티지 못하는 나약함만 남았다. 나 또한 반성해야 할 터이다.

Greta Thunberg: Act now for us

저번주에 기후 변화 주제로 스터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10대 환경 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에 대해 알게됐다. 일반적인 10대들의 관심사에 멀리 떨어져 그저 평범한 삶을 살던 이 소녀가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며 지구의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툰베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자신의 의지와 우리를 엄습하는 재앙적 현실에 대해 공유했고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툰베리의 간절한 메시지에 세계의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기후 변화에 그 어느때보다 대담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거리 시위 행렬로 화답했다. 툰베리는 이미 환경 운동으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고, 그에 따른 유명세도 톡톡히 치르고는 있지만, 내가 보는 툰베리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목소리로 단 한 사람의 생활 양식을 바꾸어 환경 보호에 실천적인 삶으로 연결되는 것. 녹색 운동이 별 게 아니라 생활의 실천이고, 그것이 전염병처럼 퍼져 실질적 온실 가스 감소와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것. 툰베리의 외침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솔직함에 있다. 환경이 중요하고 보호도 해야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간과하기도 하는 고리타분한 진실이나 이론따위는 툰베리에게 먹히지 않는다. 툰베리는, 자신이 어른이 되는 그 시점에 자신의 세대가 환경으로 고통받아 현세대의 어른을 원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미래의 우리가 살 수 있게, 지금의 어른들이 행동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결혼을 하여 자녀가 없을지언정 미래 세대가 그들에겐 조상이 될 현재의 우리를 증오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공연이 잦아 비행기를 자주 타야만 하는 유명 오페라 가수인 엄마마저 설득시켜 결국 공연을 위해 며칠을 꼬박 기차를 타고 다니게 만든 툰베리의 적극적 탄소 발자국 줄이기를 보고 있노라니 그간 나름 환경지각적인 삶을 살아왔다 생각한 게 창피했다. 이 10대 환경 운동가를 알기 전과 후의 나의 생활에는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완전 없는 삶은 힘들겠지만 가급적 플라스틱 용기가 없는 제품을 구매하려 노력한다. 저번주 월요일과 오늘 본 장인데, 이렇게 노력해도 사실 비닐까지는 정말 피하기가 어려웠다. 급진적으로 비닐까지 피하려면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게 최선인데, 집과 재래시장의 거리가 멀어서 현실적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워 일단은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최대 의식하면서 쇼핑을 한다. 그리고 대형 마트에 가는 회수도 점차 줄여갈 생각이다.
이건 저번주에 농협 로컬마트에서 본 장이다. 채소들은 모두 봉투 없이 가져왔다(이후 마트 내 신선식품 봉투 사용을 금지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건 어제 쇼핑한 것들이다. 러쉬 샴푸바는 사실 기존의 플라스틱 제품들을 다 쓰고 사려고 헀는데 잠깐 구경갔다가 친절한 직원 오빠(?)가 러쉬 비누로 손을 매끄럽게 씻겨주길래 나도 모르게 리더기에 미끄러지는 카드...
오늘은 이마트에서 장을 봤다. 내가 우유를 많이 먹어서 주로 두 팩씩 사는데 서울우유가 비닐포장이 안되어있길래 고민없이 집었고, 채소는 그냥 가격표만 위에 붙여갔더니 캐셔분이 "흙 묻은 건 비닐 쓰셔도 되는데 모르셨구나." 하셨다. 딸기는 포장 안된게 없었다. 딸기를 포기하기엔 딸기가 너무 바알갛게 추파를 보내고 있었다. 참치는 캔 대신 비닐 포장으로 나온 것을 선택했다.
집 옆에 일주일에 한 번씩 사 먹는 분식집이 있는데, 비빔밥을 포장 주문했더니 플라스틱 쓰레기가 무려 3개는 나왔다. 앞으로는 전화 주문을 포기하고 직접 가서 음식 담을 통을 가져가서 담아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불편한 건 아닌데, 그 동안 정말 편하게 산 것 같다. 생각 없이.
<다음은 Greta Thunberg의 구글 검색 결과이다. 툰베리의 인상적인 TED 토크부터 트위터 및 다양한 매체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부터 고치기

지난 4일 고성.강릉.속초와 그 지역 시민들의 마음까지 바싹 타게 만든 화마가 그친지도 벌써 일주일이 된다. 다행히 조속히 위기는 넘겼지만 앞으로 이런 산불 재해가 더 있을텐데도 진압에만 급급하고 또 무사안일하게 넘어가는 그림은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보는 듯하다. 현재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는데, 그 중 화재 관련 글 중에서 중요한 점을 짚은 두 개의 칼럼을 공유한다.
지진, 해일 등 자연 재해가 일상인 일본의 노련하고도 촘촘한 대처는 발상의 전환에서 온다는 내용이다. 피해 지역의 '블랙 아웃'까지 감안한다면 그 지역 주민들은 당연히 상황에 깜깜무소식일 수 밖에 없으니, 공중파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타지역 사람들이 앞장서서 '소식통'이 되어달라는 방송사의 탑다운(top-down) 방식은 위기상황일 수록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진 자원을 최대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요즘 스마트폰에는 DMB가 없어 라디오나 TV를 보려면 앱을 깔아야 하는데, 일본의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DMB가 필수적으로 장착되어 있다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사실 전기가 꺼지면 인터넷 연결도 안 될 확률이 많으니 앱은 위기상황에 무용지물일 것이다. DMB는 인터넷의 영향 없이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본인의 핸드폰에 이런 기본 기능이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없는 경우도 허다하니 우리는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다음의 칼럼은 야간에도 산불 진압에 투입할 수 있는 대형 소방용 헬기 설치 촉구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같이 좁은 땅에 산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드문 것을 생각하면 이미 있을법도 한데 단 한대도 없고, 구매 추진 역시 예산에 막혀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하지만, 정말 필요한 곳에는 단 1원도 허용하지 않는 무사안일함은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나 제 값을 치룰 모양이다.

And we get customized for new consumption

메모리 부족으로 노트북이 자주 다운되어 서비스 센터에 다녀왔다. 드롭박스(Dropbox)와 PC 카톡, 스티키 노트 등 이런 소소한 녀석들이 메모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RAM을 기존의 4기가에서 8기가로 업그레이드를 하기로 했다. 서비스 센터에서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받는 것과 직접 메모리를 사 와서 설치 받는 비용 차이가 거의 4~5만 원 돈이라 일단 온라인으로 램을 구매했다. 내 노트북 기종은 LG 그램인데 쓴 지 3~4년 되었지만 포맷 한 번 없이 기본적 업무는 이걸로 잘 처리했다. 게임이야 소소하게 프메 2 하는 것 빼고는 거의 인터넷 검색과 사이버대 수강, 문서 작성 정도였다. 구글 드롭박스는 최근에 많이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부팅하자마자 무려 메모리의 130MB를 잡아먹고 있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이 노트북이 사양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100만 원 초반 가격에 샀었고, 노트북으로 베그를 돌린 것도 아닌데(어차피 돌리지도 못할 듯) 램을 올려야 하다니 여하튼 세상에 공짜란 없음은 다시 한번 실감한다.
우리가 기분 좋게 무료로 쓰는 이 모든 서비스들도 결국은 일정 용량이 채워지면 "그동안 좋았지? 이제 유료란다" 하며 청구서를 내민다. 기존의 플랫폼에 집약된 나의 시간과 콘텐츠를 돈이 아까워 새 부대에 담기엔 너무 지난한 일이 될 것이고, 결국은 '이거 얼마나 한다고' 하며 플랫폼과의 별것 아닌 싸움에 백기를 들고야 만다. 특히 근래에 그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아이팟과 아이패드를 쓰고 있는데 이 두 기계의 데이터들이 아무 문제없이 연동되려면 두 기계의 용량이 같아야 하지만 아이패드 용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결과적으로는 아이클라우드에서 기본 용량을 제공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과는 내 카드로 매달 3천 원 정도의 요금을 잘 청구하고 있다. 매달 기사 읽기 수를 제한하는 뉴욕 타임스의 영특함으로 매달 4 달려 정도의 디지털 구독도 하고 있는데, 수년간 구독했던 코리안 헤럴드는 끊을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헤럴드를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지만). 가장 최근에는 네이버 뮤직 앱 서비스인 VIVE(바이브) 월 정액에 가입했다. 현재 시디를 살 여유도 없고, 시디 대신 MP3를 사 모은지 좀 되긴 했지만, 바이브 전에 이용하던 멜론의 MP3 가격이 꽤 올라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바이브의 장점(스트리밍+오프라인에서도 저장한 앨범을 재생할 수 있다는 점과 비교적 해외 인디 음원이 많다는 점)을 잘 이용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음반은 사겠다는 취지였다. CD도, MP3로 꽤나 있지만 다시는 듣지 않는 것들도 상당히 많아서 예전처럼 레코드숍에서 나오는 튠을 듣자마자 "이거 주세요" 할 만한 스웨그(swag)의 여지도 없다.
콘텐츠와 서비스의 사용에 대해 값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서비스들이 없었을 때의 나의 인생이 불편했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은 든다. 물론 그 당시에는 청계천에서 비디오테이프를 가방 무겁게 집어오고, 뮤직랜드와 타워 레코드에서 산 시디의 가운데 플라스틱 부분(그 부분의 명칭을 알고 싶다!)이 깨져서 나도 모르게 알파벳 C를 날린 기억들은 지금의 관점에선 '세상 불편하기' 짝이 없는 콘텐츠 이용법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가 더 편했던 것만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문서작성만 할 줄 하는 '앱알못 or 툴알못'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실체가 있으면서도 DEL 하나로 없어지는 허망함이란. 복제도, 삭제도 내 마음대로 간편하지만, 그 간편함의 위험에서 무방비로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는 새로운 간편함에, 삶은 참 간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Why I start writing again

갑자기 글 신이 내린 것은 아닌데 산만했던 책상 정리를 하고 오디오의 위치를 바꿨더니 노트북 앞에 앉아서(메모리 문제로 반복적으로 재부팅을 하면서) 이것저것 쓰고 싶어졌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허울 좋은 핑계로 먹고 사느라 바빴고, 좀 더 솔직하자면 게을렀고, 더 솔직하게 말해서 쓰고 싶은 게 없었다. 밖에서 멍 때리며 떠올린 생각의 뭉치들을 붙잡다가도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은 기억 안에서만 존재했다. 그걸 어떻게든 실체로 만드는 작업을 했어야 했고, 그건 생각이 나면 바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귀찮았다. '나중에, 나중에'는 정말 나중에 가 돼 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무능한 글치(?)'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나 마음만 있는 그 마음이 싫었다.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땐 편의점으로 바로 달려가는 그런 실천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구글 닥스(Google Docs)에 연습 삼아 쓰다가 마음에 안 들어 지우고 결국은 백지에 커서만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나의 네이버 블로그 서로 이웃이자, 글쓰기와 더불어 음악 및 영화 등 고른 문화 섭취(?)의 실천력을 보여주는 미모의 누님과 이런 부분(글과 음악)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눈다. 일상과 이상을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누님은 내게 있어 좋은 본보기이자 자극제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중앙일보에서 윤종신의 인터뷰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중 윤종신이 한 말이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곳에 의외로 많은 정답이 있다"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대중에게 우기면 창작자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걸 분석해서 만들면 업자죠. ‘월간 윤종신’도 회사 입장에선 당장 수익이 나진 않지만, 돈이야 내가 벌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거든요. 저는 계속 창작자로 살고 싶어요.”
'계속 창작자로 살고 싶다'라는 말에 최면이 걸린 듯 머릿속에서 연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젠 그 키보드를 꺼내 진짜를 쓸 때가 된 것이다. 사실 창작과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시대에 정말 제대로 된 글을 써야만 한다고 다그치지만 일단 나에게 관대해지고, 글을 누르는 손가락만큼은 조금은 과감하기로 했다.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지는 못해도, 막연한 아이디어들을 글로 정리하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하루하루 불안하게 사느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게 어떨지 싶다. 알파고도 내 속은 모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