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Seduzione.' 유혹하는 손길은 아름답다. 숨겨져 있던 베일의 속살보다 더 하얀 건반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다가도, 단음의 기로에서 거침없이 그녀를 떠나보내는 움직임은 미끄러지듯 소리 없다.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터치는 사려 깊다. 그런 그의 앙상블은 세세하게 선율에 녹아들어가며 유혹은 달콤하다. 한적한 카페에서 홍차와 함께 조금씩 떠먹는 케이크의 달달한 미감을 덧입은 사운드는 오후 내내 식욕을 자극시킨다.
배고픔을 잊고 듣게 되는 피아니스트, 친절한 종훈씨의 첫 번째 수록곡인 ‘Bossa for a Dead Princess'는 단순한 허밍과 피아노의 줄넘기 속에서 살포시 색소폰의 연주가 넘나든다. 모리스 조세프 라벨(Maurice Joseph Ravel)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For A Dead Princess)’ 타이틀은 보사노바 였다가도, 마지막 트랙에서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의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솔로가 되기도 한다.
잔잔한 첫 시작의 보사노바에서 화려함으로 진일보한 두 번째 트랙 ‘La Seduzione’은 볼레로를 연상시킬 만큼 강렬하고 힘 있는 연주와 그 사이에 들려오는 오밀조밀한 캐스터네츠의 움직이는 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그렇다고 볼레로 특유의 3/4박자 구성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몇몇 곡들을 굽이굽이 지나 ‘Intermezzo'의 바람 부는 서정적인 그리움을 헤치면 ’Fickle Heart'같은 요란한 대장간도 만나게 된다. 빛을 발하는 피아노 연주는 불에 쬐어진 쇠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퀸텟의 밤은 무르익는다.
달도 차면 기운다 하였으나 오늘의 밤은 이 CD 한 장과 함께라면 그리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적당한 밤이 될 것이다. 겨울의 밤은 차나 마음만은 따뜻하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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