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 금요일

Pearl Jam [Pearl Jam]



완벽한 것도 죄가 된다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 없는 장르 중 컨츄리(Country)를 빼면 지독하게도 안 팔리는 다음 타자로 그런지(Grunge)가 있다. 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를 말하기에 앞서 지저분한 패션으로 모든 청소년들에게 거지 꼴을 앞장서게 한 너바나의 그런지 룩과 음악은 나름대로 알아준다 쳐도, 그 후세대는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90년대 얼터너티브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음감실 세대에겐 먹혔을 지 모르는 포스트 그런지의 라이프하우스(Lifehouse), 디쉬왈라(Dishwalla), 베터 댄 에즈라(Better than Ezra) 등은 지금에 와서 수입 앨범 하나 간신히 구하면 성공한 셈이다. 그만큼 그런지 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전 세대의 파워를 흡수하지 못한 채 시들해져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 록 팬들은 커트 코베인의 기일을 챙기고, 펄 잼(Pearl Jam)의 새 앨범을 목 빠져라 기다린다. 이게 바로 원조의 위력이라는 걸까. 셀 수도 없이 많은 라이브 앨범만 주구장창 내 놓던 그들의 컴백 소식에 주눅들던 어메리카나가 휘황찬란한 깃발을 올린다.
지극히 미국적인 사운드가 우리 정서에 먹히지 않는 것만 빼면 펄 잼은 지극히 반듯한 카리스마로 팬들에게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커트 코베인의 잔재를 즈려밟고 올라선 시대의 라이벌이 아닌,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써머 투어를 취소하기 까지 한 의리 넘치는 동료였고, 의 짜릿한 성공을 버리고 발육을 시도한 의 모험가였다. 이번 앨범 또한 그 반듯한 기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거칠게 때린다. 속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들이 가져왔던 로커로써의 신념, 예술가로써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채. 이미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이 먹은 에디 베더의 목소리는 한층 격양되어 있고, 젊음을 사살하지 않았다.
다소 고전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로큰롤의 화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기타 사운드는 관록을 드러내지만 가끔 베더의 목소리를 추월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시지가 주는 힘이 넘쳐날 때, 노래가 듣기 좋고 나쁨을 떠나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날 것의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일곱 번째 트랙인 ‘Un-employable’에서는, 주인공인 노동자 계급의 남자는 해고 통지를 받고 로커를 주먹으로 쳐서, 손에 끼고 있던 ‘예수님은 구원하신다’라고 새겨진 반지가 찌그러진 모습을 묘사한다. 앨범의 타이틀 곡이기도 한 ‘Worldwide Suicide’는 간접적으로 미국 정부의 파병을 ‘범세계적인 자살’로 비꼬며 죽어가는 세계에 대한 전개를 늦추지 않는다. 핏발 선 광분을 그대로 표출한 채 스러져가는 디스토피아를 노래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픈 에디 베더의 간절함이 눅눅하게 배어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Worldwide Suicide’를 제외하고는 ‘Daughter’라든지, ‘Around the Bend’같은 필살의 어쿠스틱 넘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거대한 스타의 앨범 소식이 좀처럼 없는 록 계의 시점으로 본다면 펄 잼의 새 앨범은 고무적이다. 완벽한 것이 죄가 되는 나사 빠진 레트로 록들의 난립에 에디 베더의 존재는 적어도 사형감이겠지만.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세 번째 문단에서 'Un-employable'의 가사 내용은 시사 주간지인 뉴스위크의 Lorraine Ali 기자가 쓴 펄 잼 관련 기사 내용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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