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 금요일

데프콘(Defconn) [City Life]



역행준비태세 데프콘
데프콘 만큼 자신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소신 있게 한 장르를 파고드는 이도 드물었다. TV 속 보여지는 그의 모습이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때로는 마냥 유쾌할 수도, 그와 달리 의뭉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무대 앞에서만큼은 호탕하게 가사의 유희를 까발리던 엠씨(Emcee) 아니던가. PC 통신이 한창 도래하던 시절의 동호회 활동부터 시작하여 시청자들의 브라운관과 라디오까지 깃발을 꽂은 굵은 잔뼈를 확인해보니 벌써 네 번째 앨범이다. 이쯤 되면 드렁큰 타이거와 같은 백호와 하이파이브를 나눌 수 있는 강호다. 그도 그럴 것이, [콘이 삼춘 다이어리]의 깨물어주고 싶은 카툰 캐릭터는 온데간데 없다. 미간을 번쩍 띄우고, 힘을 팍 준 눈에 비장함마저 서려있는 [City Life]의 데프콘이 돌아온 것이다.
데프콘의 사전적 정의가 ‘전투준비태세’라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 빈도수 낮은 단어를 행여라도 알고 있는 청자들이나 그저 궁금해서 찾아본 이들이라면, 역시나 그가쏟아내는 여과되지 않은 탁월한 욕지거리의 선택을 절대 적군으로 몰아세우지 말지어다. 오빠의 솔직함을 이해하라며 ‘Han-Gang Gangster’가 훈수를 둘 지도 모른다. 콘이 삼춘이 몰라보게 까칠해졌다며 뒤돌아 흐느끼지도 말지어다. 일상의 소박한 감정을 담아내는 전작의 감성을 조금씩만 벗겨놓은 흔적이 자두와의 피쳐링으로 색다른 맛을 주는 ‘오빠는 열아홉’에 담겨있다. 그래서 자꾸 우울한 얘기만 할 거냐고 귀를 막지도 말지어다. 언제나 그랬듯 버벌 진트와의 조인트는 언제나 빛나는 트랙을 뽑아냈다. 연예계의 더러운 실상이 어번(Urban)한 감각의 도마 위해서 채 썰린다. 그래도 역시 가장 주목할만한 트랙은 노장 배우인 김도향의 참여로 화제가 되었던 ‘City Life’가 되겠다. 예전 넥스트의 히트곡인 ‘도시인’을 재편하여, 익숙한 멜로디에 기지를 루핑한다.
어쩌면 전작에서 그가 보여준 마쉬멜로우 만큼 부드러운 남자의 숨겨진 로망에 기대어 적당히 앉아있던 것이 좋았던 이라면 이번 앨범의 기대치를 마시고 남겨진 잔여물에 쓰디쓴 감상만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초기의 ‘Sex Drive pt.1과 같은 문제작이 담겨진 첫 번째 앨범의 기상을 받드는 것 같아 그의 행보가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왜, 인생에 한 번쯤은 도돌이표가 새겨질 때도 있지 않을까. 이건 역행의 기쁨이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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