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8일 화요일

박종훈 [La Sedugione]

'La Seduzione.' 유혹하는 손길은 아름답다. 숨겨져 있던 베일의 속살보다 더 하얀 건반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다가도, 단음의 기로에서 거침없이 그녀를 떠나보내는 움직임은 미끄러지듯 소리 없다.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터치는 사려 깊다. 그런 그의 앙상블은 세세하게 선율에 녹아들어가며 유혹은 달콤하다. 한적한 카페에서 홍차와 함께 조금씩 떠먹는 케이크의 달달한 미감을 덧입은 사운드는 오후 내내 식욕을 자극시킨다.

배고픔을 잊고 듣게 되는 피아니스트, 친절한 종훈씨의 첫 번째 수록곡인 ‘Bossa for a Dead Princess'는 단순한 허밍과 피아노의 줄넘기 속에서 살포시 색소폰의 연주가 넘나든다. 모리스 조세프 라벨(Maurice Joseph Ravel)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For A Dead Princess)’ 타이틀은 보사노바 였다가도, 마지막 트랙에서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의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솔로가 되기도 한다.

잔잔한 첫 시작의 보사노바에서 화려함으로 진일보한 두 번째 트랙 ‘La Seduzione’은 볼레로를 연상시킬 만큼 강렬하고 힘 있는 연주와 그 사이에 들려오는 오밀조밀한 캐스터네츠의 움직이는 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그렇다고 볼레로 특유의 3/4박자 구성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몇몇 곡들을 굽이굽이 지나 ‘Intermezzo'의 바람 부는 서정적인 그리움을 헤치면 ’Fickle Heart'같은 요란한 대장간도 만나게 된다. 빛을 발하는 피아노 연주는 불에 쬐어진 쇠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퀸텟의 밤은 무르익는다.

달도 차면 기운다 하였으나 오늘의 밤은 이 CD 한 장과 함께라면 그리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적당한 밤이 될 것이다. 겨울의 밤은 차나 마음만은 따뜻하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Jay Kim [Tenderness]

90년대 'Breathless' 앨범으로 국내에 색소폰 바람을 몰고 온 케니 지Kenny G의 전성기(물론 지금도 그는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때만 해도, 연인들의 아름다운 영상엔 케니 지의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들만 해도 남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언제 어디서든 색소폰을 연주하는 낭만이 있었다. 그만큼 당시의 2-30대들에게 있어 케니 지와 색소폰에 대한 향수는 크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힙합, 알앤비(R&B)의 인기가 높아짐과 동시에 스무스 재즈(Smooth Jazz)의 명맥은 그렇게 시들해져 가는 줄 알았는데, 여기 색소포니스트 제이 킴(Jay Kim)의 등장으로 기우는 일단락 된 것 같다. 얼바노(Urbano),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의 프로듀서이자 밴즈 멤버로도 활약상을 펼친 바 있는 그의 첫 솔로 연주 앨범인 'Tenderness'는 제목처럼 감미롭다. 색소폰 중에서도 소프라노(Soprano)를 쓰는 점에서(제이 킴은 미국 시카고에서 알토 색소폰으로도 활동을 한 바 있다) 알토 색소폰을 내세우는 대니 정(Danny Jeong)과 대조되는데, 이 두 사람의 음악 색채를 번갈아 들어보며 각 악기만의 색채를 비교해보면 흥미롭겠다.

대니 정은 알토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처럼 색소폰이라는 악기에서 풍기는 섹시한 이미지를 강인하고 선 굵게 표현하고, 제이 킴의 음악은 폴 테일러(Paul Taylor / 컨템포러리 재즈를 구사하는 리핑톤스Rippingtons의 멤버로도 활동)의 소프라노 연주 독집 앨범과 함께 회자 될 만 하다. 이지 리스닝으로 손색 없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분위기 있게 잘 소화해 낸 제이 킴의 음악을 들으며 국내 스무스 재즈의 가능성은 이제 막 모색되어졌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Trio Romance [Vol. 1]

국내 재즈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2005년 특히 주목해 볼 만한 사건이다. 매달 발행되는 모 재즈 전문지는 이 땅에 몇 없는 음악 잡지 중 하나가 되었으며, 독자층은 재즈 매니아에 덧붙여 충동 구매자들이다. 신기하게도 이 충동 구매자들은 재즈를 버리거나, 놀랍게도 재즈에 푹 빠져버리게 되는데 아무래도 재즈가 록보다 가진 자유정신 이전에 이들의 구미를 확 당겼던 것은 아무래도 보이기에 먹음직스러운 떡이 먹기도 좋다는 단순한 논리에 있다. 재즈가 그냥 좋을 수도 있겠지만, 재즈를 들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멋진 그림을 연상시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임달균 퀸텟, 트리오로그, 천체망원경, 임인건 그 외에 수많은 트리오들과 퀸텟이 재즈 클럽을 누비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트리오 로망스' 앨범은 예전과 달리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된 팬들의 디저트와도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오늘날 국내 재즈를 뒤돌아 봤을 때 미래는 달콤하고 화사하다. 교회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찬양 시간에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찬송가를 컨템포러리 재즈로 매끄럽게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트리오의 구성원을 보면 안다. 베이시스트로서는 드물게 독집을 낸 모그(Mowg)가 우선 가장 눈에 띄고, 피아니스트 민경인, 드러머 안성욱 이 세 연주자들의 조합은 유러피안 재즈트리오(Europen Jazz Trio)를 연상시킬 만큼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기량 넘치는 마스터들의 로망스에 주님도 기뻐하겠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지나(Jina) [GinaGram]






















원색감이 돋보이는 재킷 디자인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커버 속 그녀의 제스처였다. 올해 만난 많은 신인 아티스트들의 신보들 중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지나의 앨범 재킷은 보고만 있어도 음악이 들린다. 그리고 재킷을 열어 씨디를 재생하면 그녀의 위풍당당함이 시종일관 트랙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실제 음악도 담겨져 있다.

아직도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뮤지션들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지 않을 만큼 희박하겠지만, 수적으로 상관없이 그녀는 모든 이를 다 합친 것보다 풍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내 음악계가 주목해야 할 차세대 아티스트임에 틀림없다. '신인이니까 열심히 할 거구요, 예쁘게 봐주세요.'하는 힘없는 우리네 예쁜이 여가수들이 화면을 수놓고 있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시원한 일침을 맛봤다고나 할까. 지나그램이 보여주는 완벽주의는 속사포처럼 늘어놓는 래핑도, 재지함을 쿡쿡 찌르며 모습을 드러내는 턴테이블의 스핀도 제 역할에 충실하며 그녀를 압도하지 못한다. 예전에 리뷰를 한 바 있는 제이 킴(Jay Kim)과는 또 다른 맛의 스무스 재즈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애시드 재즈에 가까우면서도, 스탠다드한 재즈 피아노 연주를 향한 그녀의 소소한 애정이 엿보여진다.

앨범 한 장으로 아티스트의 자의식을 청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노래하며 연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Two Ton Shoe [Resoled & More] / 앨범 소개글

'투 톤 슈' 라는 이 특이하고 재밌는 이름 앞에서 음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그들의 앨범을 들어보라. 오랜만에 만나는 경쾌한 밴드임에는 틀림없으니. 인디 음악 전문 웹 싸이트인 'GODS OF MUSIC'에서 그들의 앨범을 두고 '자미로콰이(Jamiroquai)의 'Traveling without moving'이후 가장 빼어난 펑크(funk)팝' 이라는 격찬까지 했다면 더더욱 궁금해진다.

닐 다이아몬드, 닐 영, 그리고 빈스 닐을 좋아하는 리드 보컬 저스틴 비치, 에디 밴 헤일런을 흠모하는 기타의 제이크 샤피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을 받은 베이시스트 제프 길맨, 벡과 래디오헤드를 자주 듣는 버클리 음대 조교수 드러머 데이브 디센소. 이 네 명의 음악 청년들의 본적은 보스턴의 지역 밴드인 'Mystery Jones' 였으나 제이크 샤피로가 이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1995년 말에 러시아에서 돌아오게 되었고, 이후 밴드의 히트곡이었던 'Two Ton Shoe'라는 이름을 밴드명으로 짓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네 사람은 밴드 결성년도인 95년 전에도 비공식적으로 합주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투 톤 슈로 거듭난 그들의 음악에도 물론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고수하던 장르인 록에 소울풀함과 정돈된 느낌을 가미했더니 팬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보스톤의 투 톤 슈가 그 머나먼 캘리포니아에서 공연을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입지를 굳히고자 자신들의 레이블인 L-Shaped Record를 만들어 직접 자신들의 앨범을 마케팅하기 시작한다. 웹싸이트, 메일링부터 스케쥴링, 프로모션 모든 것을 관리했고 결과는 인디 밴드의 열악한 조건을 감안한다면 대성공이었다. 급기야 이 야심찬 밴드는 결국 우리나라까지 상륙했다. 우선 그들과 비교될 수 있는 밴드가 있다면 단연 Maroon 5가 되겠다. Funk를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음악적 성향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두 밴드 모두 훵크라는 뿌리는 같되, 투 톤 슈에게선 왕년을 주름잡던 메탈 밴드 사운드의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단연 차별되는 점은, 마룬 5를 키운 팔할은 디지털 시대의 총아인 MP3였지만 투 톤 슈를 키운 것은 '쉬지 않는 라이브 무대'였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

프렐류드(Prelude) [Croissant]






















2006년 벽두를 알리는 개의 힘찬 짖음과 동시에 연합 뉴스에 자랑스럽게 뜬 프렐류드의 미국 ‘블루노트’ 입성 소식은 분명 반가운 것이었다. 그러나 더 반가운 것은, 이들의 음악을 음반으로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아닐까.

도입적인 기능을 가지면서, 즉흥적이고도 자유로운 양식이라 말할 수 있는 ‘프렐류드=전주곡’는 그들의 이름처럼,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의 박진감을 보는 듯한 연주와, 그 속에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 또한 강/약이 살아 숨쉬는 앙상블은 듣는 내내 강렬한 이펙트를 선사한다.

문득 모 회사의 제품 광고가 떠오른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라 했던가. 그 광파 오븐으로 구우는 크로아상은 제법 맛있을 듯하다.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재즈 팬들의 귀를 사로잡은 프렐류드의 ‘Croissant' 만큼이나.

안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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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ming Urban Stereo [Very Very Nice! And Short Cake]






















시부야케. 시부야케. 시부야케. 이젠 아주 지겹다.

시류가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로 변하는 슬픈 사실에 정작 음악을 만드는 이들은 굳이 "난 이것을 하고야 말테다." 라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음악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가 내리는 정의에 트렌드도 그들도 죽어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음악은 뉴욕의 두 일본계 여성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진 Cibo Matto(치보 마토)의 첫 앨범 'Viva! La Woman'이 가진 음식에 대한 컨셉을 내놓은 것과 같은 다채로움이 묻어다는 동시에 소울과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의 접목을 꾀하는 Moloko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누구의 장점과 누구의 장점을 뽑아서 허밍 어반 스테레오가 되었다기 보다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의 색깔은 무지개 뿐 만 아니라 파스텔도 될 수 있을만큼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하는 추측이 자꾸 드는 건 음악 감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Scully Doesn't know'의 경우, Moloko의 'Sing it back'의 소프트한 한국버젼인 것 같고, 'Waltzsofa #1'은 Towa Tei의 앨범 'Sound of Museum'의 인트로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언급한 곡들은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는 넘버들이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는 소리 소문 없이 청취된 EP 이후 첫 데뷔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해냈다. 한 손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카라페를(DISC 1), 한 손엔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쥐워주었으니(DISC 2) 말이다. 제이미 올리버 같은 매력적인 젊은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재료가 음악이라는 점만 다르다.

안현선

joeygottheblues@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