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8일 목요일
다시 가 본 맨하탄: 영화 [Manhattan]
아주 오래 전에 사 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열지 않은 우디 앨런의 79년작 [맨하탄, Manhattan]을 플레이어에 걸었다. 흑백 화면에 담긴 뉴욕 맨하탄의 풍경이 조지 거쉰의 ‘Rhapsody in Blue’ 선율과 함께 펼쳐지자, 그는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뉴욕 시를 흠모한다. 그에게 계절에 상관없이 뉴욕은 항상 변함이 없으며 조지 거쉰의 음악이 고동치는 그런 곳이다. 그는 맨하탄에 대해 모든 것에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부패의 상징이지만 뉴욕을 흠모한다. 그는 뉴욕을 사랑하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눈을 감고 잠시 추억에 젖었다. 우디 앨런을 좋아하지만 그의 영화를 오랜만에 꺼내든 건 순전히 뉴욕 때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의 필름을 통해 다시 만난 뉴욕은 실로 감격적이었다. 나는 5년 동안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동안 미국 여행을 갔다. 일정의 반은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뉴욕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뉴욕은 단지 뉴욕일 뿐이야. 뉴욕을 미국이라고 생각하지마.” 라고 했을 때의 그 묘한 이질감-뉴욕에 살지 않는 누군가도 뉴욕을 매우 개별적인 그 자체로 여기는 것 ‘자체’가-도, 뉴욕 공립 도서관을 갔을 때도 그들의 인사가 “안녕?”이 아닌, “웰컴 투 뉴욕.”인 것, 그 이상하리만치 특이한 경험은 모두 그 곳에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곳 어디에선가 클라리넷을 불고 있을 우디 앨런과 같은 구역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소박한 특권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캐리 브래드쇼가 잠시 파리로 눈을 돌렸을 때도 “난 뉴요커에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뭇 여성들의 부러움과 환호성을 받는, ‘뉴욕=화려함=동경’과 같은 성질의 것과는 달랐다.
‘신세계는 유럽이 꿈꾼 자기 자신의 위대한 모습에 불과했다. 그것은 신을 닮고 싶고, 그러면서도 아주 아주 부유해지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이런 이상한 ‘절대적인 것의 혼합’을 뉴욕 시티만큼 잘 구현하고 있는 곳도 없다. 뉴욕은 신세계의 모든 불가사의, 혼란, 모순이 집결된 것이다. 뉴욕은 섬 위에 세워진 하나의 이상적인 도시이다.’ (‘뉴욕: 한 도발적인 도시의 연대기’ 중에서)
TV 프로그램 쇼의 작가지만 자신의 신념과는 다르게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쇼를 못 견디고 나온 40대의 아이작(우디 앨런)에게 아직 세상은 그럭저럭 살 만하다. 그가 좋다며 쫓아다니는 17살의 소녀 트레이시가 있고, ‘이혼남의 아들이 나중에 더 잘 나간다’라는 티셔츠를 입으며 가끔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의 친한 유부남 친구 예일(마이클 머피)의 애인이자, 필라델피아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는 메리(다이앤 키튼)와 알게 된 것도 그의 삶에서는 나름 즐거운 사건이다. 다만, 전처 트레이시(메릴 스트립)가 그의 ‘밝히기 민망한’ 사생활 내용을 책으로 쓴다고 한다거나, 열일곱 트레이시(매리얼 헤밍웨이)에게 느끼는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고민이 그를 괴롭히는 것뿐이다. 자신이 환멸을 느낀 일터에서 불평을 한껏 쏟아내고 실직한 뒤, 후회하면서 ‘그건 쿨한 짓이었어.’ 라고 자조적인 위로를 하고, 때로는 전처의 ‘결혼, 이혼 그리고 자신 본위’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이전 성생활까지 까발려지는 신세지만, 아이작은 그의 ‘트레이시’와 그의 또 다른 자아 ‘메리’에게 있어서는 자상하고, 투덜대고, 솔직하고, 소심하지만 거침없는 지적 매력을 지닌, 그야말로 ‘그들이 사랑하는 뉴욕’의 남자이자, 그들이 사랑하는 ‘뉴욕의 남자’다.
영화 [맨하탄]은 뉴욕의 등장인물이 배경이자, 뉴욕이 배경인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우디 앨런 영화의 페이소스인 주인공들의 대화가 영화의 주를 이루는 것도 있지만, 영화는 그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뉴욕의 순간에 몰입한다. 가령 예일이 메리에게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리하자는 심각한 의사를 전달하는 동안, 메리를 향한 카메라는 그녀 뒤의 식사 중인 사람들과 그 순간의 레스토랑 분위기를 포착한다. 한편, 메리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아이작과 메리의 행복한 순간들에는, 영화에서의 뉴욕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들의 순간은 ‘퀸스보로 브릿지’에서, ‘센트럴 파크’에서,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마치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의 아름답고 온화한 뉴욕 사진처럼 빛난다.
‘뉴욕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출구를 찾아 헤매는 곳, 그리고 영원히 방황하도록 선고 받은 곳이다. 세상의 어떤 곳도 뉴욕보다 진실하지 않다. 아무리 보기 흉해도 우리는 뉴욕을 당당하고 정열적인 아름다움을 지난 도시, 영원한 욕망의 장소로 기억한다. 또한 뉴욕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인생이 영광스럽게 채워지고, 그들의 배고픔이 충족되리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곳이기도 하다.’ (토마스 울프)
아이작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영원히 방황하도록 선고 받은 도시에서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아이작-메리-예일 그리고 트레이시. 아이작은 자신과 왠지 모르게 닮은 메리에서, 런던으로 떠나려 하는 트레이시를 붙잡으며 그녀의 마음을 돌릴 임기응변을 두서없이 내뱉는다.
“내가 좋아하는 네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아이작)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요. 사람에게 믿음을 좀 가져봐요.” (트레이시)
영화 [맨하탄]은 끊임없이 긴장하고 생존해야 하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나름 긴장을 풀며 삶의 균형(일, 사랑, 적당한 여가)을 갈구하는 뉴요커들의 농담과 실수를 로맨스로 풀어낸다. 그러나 이 모든 스토리 속에서 우디 앨런의 애증 어린 로맨스를 받는 주인공은 바로 뉴욕이 아닐까. 이 영화를 두고, 그가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도시에 대한 존경인 동시에 비판이 되기를 원했다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말이다.
1시간 36분의 영화 길이만큼 여행의 기억은 릴처럼 감겨지겠지만 확실한 것은, 뉴욕은 영화에서도, 누구든 그 곳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의 기억에서도 오만하지만 아름다운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 오만에는 거부할 수 없는 뉴욕이라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자긍심이 있기에 매혹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뉴욕이 벌써부터 다시 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중이고, 영화 [맨하탄]은 그런 마음을 달래주는 최상의 영화다.
2011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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