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8일 목요일

한 여름 밤의 약수터

물이 다 떨어지면 의례 물을 먹지 않았다. 사람이 물 없이는 못산다고 하지만, 절실하지 않으면 있어도 그만이게 되나보다. 그런데 오늘은 물이 없어 밥을 먹다가 목이 메일 가족이 생각났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내 목을 조이는 것만 같은 그들이, 가족이 가끔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생각난다. 물 받을 시간이 지났나 몇 분 갈팡질팡하다 빈 생수통 세 개를 메고 산길을 올랐다. 큰 정수기 물통을 들고 걸어가는 건강한 가족을 만났고,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펴고 맛난 것을 해 먹는 아줌마들도 보였다. 이윽고 약수터에 도착하여 콸콸 흐르는 1급 지하수를 고이 세 통을 받고, 한 잔 시원하게 떠 마셨다. 한 여름 밤의 풀 냄새를 맡았다. 자정으로 향하는 바람이 귀에 감긴다. 철 모르던 시절, 나는 내가 이사 온 동네가 무척 창피했다. 몇 년간 이 서울 하늘 아래에서 풀 냄새를 유일하게 맡다보니 서서히 미움도 치유가 되었나보다.

2008/07/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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